뉴스

이해와 오해 ㊲ 영화 「동주」를 보면서

입력 : 2016-04-07 15:03:00
수정 : 0000-00-00 00:00:00

영화 「동주」를 보면서

 

시인 윤동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와 동시대를 살아간 많은 작가들이 시대의 무게를 감당하기 못해 영혼을 포기한 글을 썼지만 윤동주는 자신의 글 속에 영혼을 오롯이 담아내고 지켜낸 시인이란 점에서 귀한 존재이다.

 

이 시인이 비명에 가지 않고 천수를 다했더라면 그 자신이나 그의 후손들은 어쩌면 중국에 사는 조선족 동포로 남았을지 모른다. 

약 2백만에 달하는 조선족 동포들은 한국어를 모어로 사용하고 있다. 

조선족 사회에서 한국어(조선어)를 바탕으로 한 문학활동도 활발하지만 국내 문단과는 잘 연결되고 있지 않다. 

영화 『동주』의 약진을 보면서 조선족 문단과 국내 문단이 긴밀하게 이어지는 장래를 꿈꾸며 어느 조선족 시인의 작품을 여기에 소개한다.

 

 시인

 -윤동주 시인의 영정 앞에서-

 

 투사이고

 시인이고 하는

 당신을

 나는

 투사보다 먼저

 윤동주 시인으로 알고 싶습니다.

 투사란 의미는

 쇠덩이로 주조된

 너무 강한 형상의 표현이며

 시인이란 뜻은

 무한한 공간을 열어주는

 감정의 울림이기 때문입니다.

 백의민족의 혈흔사책에는

 투사의 이름은 두루 많아도

 가장 처절한

 암흑시기에

 결백한 이념의 시세계를

 구상한 그런 시인은

 당신 혼자 아닌가 생각되어서입니다.

 

(이 작품은 1998년 북경 민족출판사에서 나온 허흥식 시인의 시집 「용드레우물」에 수록되어 있으며 1991년 작입니다.)

 

 

글 박종일(지혜의 숲 권독사)

 

 

 

#37호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