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이해와 오해 ㊵ 중국의 여성 부호(富豪)

입력 : 2016-05-13 14:30:00
수정 : 0000-00-00 00:00:00

중국의 여성 부호(富豪)

 

중국의 경제 월간지 《호윤백부(胡潤百富, Hurun Report)》는 매년 중국 부호들의 순위를 발표하여 상당한 인기를 끄는 잡지이다. 이 잡지가 2010년 10월호에 발표한 ‘전세계 100대 부호’ 가운데서 여성 부호가 가장 많은 나라는 중국이었다. 그리고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가진 자수성가한 여성 부호 20명 중에서 11명이 중국 여성이었다.

 

중국의 역사기록에 가장 처음으로 등장하는 여성 경영자는 청(淸)이란 이름의 과부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화식열전》은 이 여성의 행적을 76자로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과부 청의 가족은 단사(丹砂) 제련을 가업으로 경영하고 있었고 독특한 채굴과 제련 기술을 갖고 있어서 대를 이어가며 가업이 번성했다. 과부 청은 가업을 물려받아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사설 무장대를 조직하여 재산을 지켰다. 그가 살던 시대는 진(秦)이 천하를 통일하던 무렵이었고 진은 산업의 국유화를 지향하면서 호족의 경제활동을 심하게 억압했다. 이런 시대에 진시황은 그에게 ‘정부(貞婦)’라는 시호를 내리고 표창했다. 진시황은 생전에 자신의 능묘를 건설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기 위해 능 안에 ‘땅과 하늘의 모양을 만들고 땅에는 수은을 부어 강과 바다의 흐름을 나타냈다’. 그 시대에 수은은 단사를 제련하는 부산물로 나왔는데, 단사 광산을 독점하고 독특한 제련 기술을 확보하고 있던 과부 청은 진시황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인재였다.

 

중국에서 여성 경영자가 가장 활발하게 활약한 시기는 당(唐) 시대이다. 중국사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황제(무측천)가 등장한 사회적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당시 낙양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상인 고오낭(高五娘)도 과부였고 제련업을 경영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미모가 뛰어났고 첫 남편이 죽자 얼마 안가 재혼했는데 풍부한 재력이 재혼하는데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당 중기에 조선업이 발달한 장강 유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경영자는 유대낭(兪大娘)이었다. 당시 화물선은 일반적으로 8~9천 석을 실을 수 있었는데, 그가 만든 배는 만 석을 실을 수 있었다. 배위에서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고 수백 명의 선원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 안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경제의 발전상도 놀랍지만 그 속에서 여성 경영자들의 활약도 대단한데, 여성 경영자들의 전통은 2천 몇 백 년 전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글 박종일(지혜의 숲 권독사)

 

 

 

#40호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