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이해와 오해 ㊶ 애국, 용기

입력 : 2016-05-26 15:15:00
수정 : 0000-00-00 00:00:00

애국, 용기

 

우리가 프랑스 지식인에 관해 얘기할 때면 에밀 졸라로부터 시작되는 계보를 떠올린다. 그는 간첩으로 몰린 드레퓌스를 변호했다. 싸르트르는 자동차공장의 드럼통 위에 올라서서 연설을 했고 푸코의 대머리는 경찰봉에 맞아 터졌다. 모두가 정부에 대항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프랑스 지식인들이 나치 군대가 침입했을 때 펜을 던지고 총을 들었던 사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아날학파의 창시자인 마르크 블로크는 1차대전 때 소위로 참전했다. 2차대전 때는 54세의 대학자였다. 미국 학계가 그를 구하려고 불렀지만 그는 가지 않았다. 그 나이에 그는 리용으로 달려가 지하활동을 하다가 붙잡혔다. 4개월 동안 손톱이 뽑히고, 얼음물 통에 처박히고, 뜨거운 물을 끼얹히는 등의 고문을 당하고 끝내 처형대 앞에 세워졌다. 네 사람이 한 줄로 같이 섰는데 그의 옆에는 지하운동을 하다 잡혀온 열여섯 살의 소년이 섰다. 그 소년이 떨면서 블로크에게 물었다. 선생님, 아플까요? 아냐 아프지 않아, 한순간에 지나갈 거니까 걱정하지마. 이것이 위대한 역사학자의 유언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프랑스 신소설의 대가인 클로드 시몽도 지하활동을 했다.

 

독일에 저항한 이들은 애국 영웅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독일 점령 시기에 저항운동을 하다가 종전 후까지 살아남은 지식인들의 대부분이 알제리의 독립을 지지하는 운동에 참여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비난했다. 프랑스를 지키려고 나치에 맞서 생명을 내놓았던 당신들이 어떻게 프랑스 식민지의 독립을 지지하는 매국노, 반역자가 될 수 있는가?

 

프랑스 고전학의 대학자 장 삐에르 베르낭은 이렇게 말했다. "나치가 우리의 국토를 침입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저항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조국을 위해 생명을 걸려는 알제리인의 권리를 빼앗아서도 안 되고 빼앗을 수도 없다. 이것이 일관성이고 통일성이다."

 

나치에 저항했던 지식인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나라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알제리 독립을 지지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애국적인 행위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 

 

국가에는 이념이 있다. 무슨 이념인가? 그들은 프랑스 대혁명을 떠올렸다. 우리 프랑스란 나라는 어떻게 세워진 나라인가? 자유, 평등, 박애, 이것이 우리의 국가이념이다. 그 이념 위에서 우리는 나치에 저항했고 같은 이념 위에서 우리는 알제리의 독립을 지지한다. 알제리의 독립을 지지하는 일이야 말로 프랑스의 국가존엄을 지키는 일이다. 프랑스 지식인들은 자신의 생명과 행위와 문장을 통해 프랑스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요즘 일상에서 흔히 듣고 보는,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부르짖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는 애국은 거짓이고 위선이다.

 
 
 

글 박종일(지혜의 숲 권독사)

 

 

 

#41호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