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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58] 대만 원주민

입력 : 2017-02-27 1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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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원주민

 

19세기 말 청일전쟁(중국 측에서는 갑오전쟁이라 부른다)의 결과 청 왕조는 대만을 전쟁배상금으로 일본에 떼 주어야 했다. 일본 식민정부는 대만 원주민을 고산족과 평지족으로 구분했다. 대체로 보아 고산족은 한족과의 동화를 거부하고 고산지대로 들어갔고 평지족은 한족과의 동화 정도가 비교적 높다는 차이가 있다. 대만 원주민의 현재 인구는 대략 50만이며 부족 구성이 복잡하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조상이 물려준 전통과 생활방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부족마다 자기 조상신을 섬기고 뱀을 토템으로 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언어는 부족 간에 차이는 있어도 매우 유사하며 전부 오스트로네시아 어계(Austronesian Languages)에 속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오스트로네시아 어계의 분포와 분화과정을 연구한 서방 고고인류학자들은 매우 놀라운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대만 대분갱(大坌坑)유적의 거주민은 중국 대륙 연해지역에서 건너왔고 이 유적은 또한 대만 원주민의 발원지이다. 그리고 태평양과 인도양의 거의 모든 섬의 주민은 대분갱유적의 자손이며 같은 오스트로네시아 어계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대만 원주민과 같은 혈통이며 대만은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의 고향이다. 1990년대 초에 오스트랠리아의 피터 벨우드(Peter Bellwood)가 이런 주장을 내놓은 후 국제학계에서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미국학자 자레드 다이어몬드(Jared Diamond)도 1997년에 ≪총포, 병균, 강철≫이란 저서에서 벨우드의 주장을 전적으로 지지하였다.

 

벨우드는 중국과 동남아지역의 언어를 크게 4개 어계로 나누었다(중국−티베트, 묘요苗瑤, 타이−카다이, 오스트로네시아). 중국학자들은 중국신화를 빌려 어계의 형성과 확산을 설명한다. 상고시대에 황하유역의 화하족(黃帝)과 동이족(炎帝)이 연합하여 묘족(蚩尤치우)을 패배시킨다. 황제와 염제의 자손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중국-티베트 어족으로 발전한다. 묘족은 패배한 후에도 요, 순, 우로 대표되는 중원세력에 쫓겨 가다가 중국 남부와 동남아에 지역에 동화 정착하면서 묘요 어족과 타이-카다이 어족을 형성한다. 묘요 어족은 중국 남부와 태국 등지에 약세인 체로 남아있고 타이-카다이 어족은 라오스, 버마와 중국 남부지역에 분포해있다. 쫓겨 가던 묘족의 일부는 복건과 광동 연해에 이르렀다가 최종적으로는 바다건너 대만으로 밀려난다. 대분갱문화는 6,7천 년 전에 복건과 광동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일군 것이다. 이들은 조상의 언어와 뱀 토템을 숭배하는 문화를 그대로 간직했다.

 

학자들은 초기 대만 원주민들이 배의 속도를 높이면서도 전복되지 않고 항해할 수 있는 통나무배 건조 기술을 발전시켰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대분갱문화의 선주민들은 대만섬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일부는 더 넓은 바다로의 모험을 감행했다. 필리핀군도, 비스마르크군도, 솔로몬군도, 마리아나군도, 사모아군도, 폴리네시아군도.... 가장 북쪽으로는 하와이군도, 가장 동쪽으로는 이스터군도, 가장 남쪽으로는 뉴질랜드까지....그리고 보르네오, 말레이군도, 자바, 수마트라....가장 멀리는 인도양을 건너 마다가스카르까지. 비교적 큰 섬을 만났을 때는 토착세력과의 충돌을 피해 우회하거나 토착세력에 동화되었다.

 

세계에 현존하는 어계 가운데서 오스트로네시아 어계의 분포지역이 가장 넓다.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의 인구는 대략 2억 오천만, 그 발원지 대만 원주민의 5백배가 된다.



 

글 박종일(지혜의 숲 권독사)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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