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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76] 김치와 고추

입력 : 2017-12-04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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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고추

 

우리나라 식단 차림의 전형인 반상(飯床) 차림은 뚜껑이 있는 그릇에 담겨 나오는 반찬의 가짓수에 따라 3, 5, 7첩 등으로 구분되며 왕의 수라상은 12첩이었다. 밥과 국과 김치는 어디에서나 빠지지 않으면서 첩 수에는 넣지 않았으니 그만큼 김치는 가장 기본적인 부식이었기 때문이다. 김치의 어원은 침채(沈菜)’이며 담근 채소란 뜻이다. 깍두기, 오이지, 단무지, 장아찌가 모두 넓은 의미에서 김치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다꾸앙(澤庵)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쯔께모노(漬物), 서양의 피클(pickle), 독일의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 인도네시아의 아차르(acar)도 채소를 식초나 소금에 절인 김치의 일종이다. 우리나라의 김치는 ’-짠지, 싱건지, 묵은지, 오이지-라고 불렀다. 초기의 김치는 단무지나 장아찌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랬던 김치가 고춧가루와 젓갈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모양과 맛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방식의 김치는 18세기부터 만들어졌는데 이때까지는 무와 오이가 김치의 주재료였다. 배추김치는 18세기 말에 중국으로부터 크고 맛이 좋은 배추 품종이 들어온 뒤로 만들어졌다. 배추김치가 무김치보다 더 보편적으로 선호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온 뒤의 일이다.

김치를 담글 때 빠져서는 안 되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향신료이기도 한 고추는 16세기 말에 조선에 전래되어 17세기부터 서서히 보급되었다. 조선 전기에 향신료로는 후추(胡椒), 천초(川椒), 생강(生薑) 등이 사용되었다.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진 후추는 매우 비싼 물건이어서 처음에는 약재로 사용되었고 조선 초기에도 왕의 하사품으로서 자주 등장하였다. 일본사신이 연회자리에서 사신이 후추 한 움큼을 상 위에 흩어놓자 악공과 기생들이 이를 줍느라 소동을 벌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추가 없던 이 시기에 매운 맛을 내는 향신료로는 주로 천초와 생강, 겨자가 사용되었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고추는 남만초(南蠻椒)’, ‘왜겨자(倭芥子)’란 이름으로 16세기 들어와 서서히 보급이 확대되면서 17세기 말부터 가루로 만들어져 김치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게 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 고추는 향신료로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 후추는 더 이상 고가품이 아니게 되었고 천초-‘산초(山椒)’라고도 불렀다-는 추어탕의 양념으로나 쓰이게 되었다.

오늘날 김치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식문화를 은근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매운 음식은 많다. 바깥세상에는 김치와는 비교가 안 되게 매운 음식이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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