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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87] 38선

입력 : 2018-05-09 10:38:00
수정 : 2019-11-18 06:50:04

 

38선


매일 38선을 눈앞에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파주사람들이다.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38선은 상징이거나 관념이지만 파주사람들에게 38선은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지난 달 말에 남과 북의 최고 정치지도자가 만나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기로 합의했다. 이제 38선의 성격과 역할은 바뀔 것이다.
임진왜란은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 아니다. 일본의 목표는 중국 대륙이었다. 명나라가 조선에 파병한 목적은 조선의 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중국진출을 막자는 것이었다.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중국과 일본은 화의를 시도한다. 이때 일본이 중국 측에 제시한 조건은 1)중국의 황녀를 일본의 후비로 줄 것, 2)양국간의 교역을 증가시킬 것, 3)조선 8도 가운데서 4도를 일본에 할양할 것, 4)조선의 왕자와 대신 12명을 인질로 보낼 것 등이었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듯이 이 화의는 성립되지 못했다. 그러나 38선의 원형 개념이 400여 년 전에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이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영국의 외교 국방정책의 최대관심사는 러시아 세력의 남하를 막는 것이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 세력의 침투를 저지하고 동아시아에서는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것이 영국 외교 국방의 구체적 목표이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인접한 중국의 동북지역에서 세력을 굳히고 조선반도를 통해 태평양으로 진출하려 했다. 영국은 아시아의 신흥강국으로 등장한 일본을 지원하여 러시아와 대적하게 하였다. 일본과 러시아가 조선반도를 두고 갈등할 때 영국은 조선반도를 일본과 러시아가 분할 점령하는 조정안을 내놓았다. 여기서 또 한 번 38선이 역사의 무대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데 일본은 정면대결을 선택하였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일러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였고 조선은 절반이 아닌 통째로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1945년에는 38선이 개념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한반도를 둘로 나누었다. 그리고 70여년이 흘렀다. 그 과정은 우리 시대에 직접 겪은 일이니 익히 아는 바이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마침내 38선이 400여년 만에 개념에서 실체로 되었다는 사실이다.
38선과 한국은 참 끈질긴 역사적 인연(?)을 갖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갈등을 빚는 위치에 자리 잡은 약소국이라서 치러야 했던 역사의 고통이 너무나 길고도  컸다. 그 굴레를 벗어나는 길을 찾자고 남북의 최고지도자들이 합의했다. 희망은 찬란하나 갈 길은 평탄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길로 가야한다. 나라를 몽땅 들어서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다면 남은 선택은 그것뿐이다. 이 땅을 양대 세력의 갈등의 찌꺼기가 쌓이는 쓰레기통이 아니라 양대 세력이 교류하는 통로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평화가 온다.

그래서 파주는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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