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오해 (129) 구육(狗肉, 개고기), 19세기 후반까지 프랑스에서 인기 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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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129
구육(狗肉, 개고기), 19세기 후반까지 프랑스에서 인기 식품
박종일
▲ 개고기 축제를 풍자하는 중국 만평. ⓒ구글 이미지 검색
구육이라 한자로 쓰면 유식해보이지만 그냥 “개고기”다. 사람이 언제부터 개고기를 먹었을까? 갑골문에는 “양, 개, 돼지를 잡아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숱하게 나온다. 어떤 갑골편에는 “개 100마리, 돼지 100마리, 소 100마리를 잡아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제사의 규모도, 식용 가축으로서 개를 사육한 규모도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다.
개고기는 주(周)나라 천자가 연회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주요한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춘추시대의 역사(力士) 주해(朱亥), 진시황 암살을 시도했던 전국시대 자객 형가(荊軻)의 절친한 친구 고점리(高漸離), 유방(劉邦)을 도와 한(漢)을 건국한 번쾌(樊噲)는 모두 개백정 출신이다. 오(吳)나라와 전쟁을 준비하던 월(越)나라에서는 사내아이를 낳은 여성에게는 개를, 계집아이를 낳은 여성에게는 돼지를 상으로 주었다(개가 돼지보다 상급의 식품이었다).
[사기(史記)](기원전 1세기 저술된 책)에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말이 실려 있듯이 중국에서는 고대로부터 개고기가 널리 판매되고 있었다. 개고기를 먹는 문화는 고대 동아시아에 널리 퍼져있었다. 일본에서는 불교에 심취했던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德川綱吉)가 1687년에 “생류연민령(生類憐憫令)”을 반포하기 전까지는 개고기를 먹었다.
중국 남부의 여러 성에서 지금도 개고기는 인기 식품이며 남북한과 베트남에도 개고기를 먹는 전통이 남아있다. 송(宋)나라에서는 “개고기는 식탁에 올리지 않는다”는 금기가 있었는데, 황제 휘종(徽宗)이 개띠라서 개고기 식용을 금했다고 한다. 송이 멸망한 후 중국인은 다시 개고기를 먹었다. 16세기에 저술된 중국 의학서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개고기가 양기를 북돋아주고 신장과 위에 좋다고 하였다.
동아시아의 농업민족에게는 개고기를 먹는 풍습이 있으나 유목민족은 대부분 개고기와 말고기를 먹지 않는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개고기와 돼지고기를 부정한 것이라 하여 식용을 금할 뿐만 아니라 사체와 혈액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한다. 1519년에 멕시코의 테노치틀란에 도착한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는 아즈테크인들이 식용으로 사육한 개를 먹고 있으며 시장에서 개고기가 흔하게 팔리고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중국인 대부분은 개고기를 즐겨 먹지만 만주족, 티베트족, 회족은 먹지 않는다. 도교를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개고기는 금기 식품의 하나이다. 일본인은 극소수가 개고기를 먹는다. 고대에 개는 말, 소, 원숭이, 닭과 함께 보편적인 식용 동물이었으나 지금은 가고시마 일부 지역에만 개고기 요리가 남아있다.
베트남(특히 북부베트남)에서 개고기는 인기 있는 식품이다. 개고기의 소비량은 닭고기, 돼지고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베트남인은 개고기가 남성의 성적 능력을 높여준다고 생각한다. 힌두교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인도인은 채식주의자이지만 북동부 일부지역에서는 개고기를 먹는다. 이슬람교를 믿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도 비이슬람지역인 술라웨시와 수마트라에서 개고기는 명절과 잔치 음식이다. 필리핀에서 개고기는 금기 식품은 아니며 개고기를 식용으로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동물복지법이 1998년부터 시행중이지만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고 있다.
지금은 프랑스에서 개고기는 금기식품이지만 프랑스인의 선조인 고대 골족의 유적에서는 개고기를 식용으로 했음을 보여주는 숱한 자료가 발굴된다.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개고기는 프랑스인에게 인기 있는 식품이었다. 당시의 신문 보도에는 개고기가 “미묘하고 부드러운 맛” 때문에 대중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1910년까지 파리 시내에는 개고기 전문 푸줏간이 문을 열고 있었다. 지금은 파리 북부 지역 일부에 개고기를 먹는 풍습이 남아있다고 한다. 독일인은 1920년대까지는 개고기를 먹었으나 1986년부터 개고기 식용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벨기에에서 개고기는 인기식품은 아니지만 벨기에 수의학회는 개고기를 식품으로 추천하고 있다. 폴란드인은 개고기를 먹지는 않으나 개고기 기름을 약용으로 사용한다. 종잇장처럼 얇게 저민 개고기 절편(gedörrtes Hundefleisch)과 소금에 절여 말린 개고기를 원료로 하여 만든 햄(Hundeschinken)은 스위스인이 즐기는 음식이다. 스위스에서 개고기를 먹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만 상업적 목적으로 개고기를 이용한 식품을 생산하는 것은 불법이다. 태평양의 폴리네시아인과 뉴질랜드 마오리족은 개고기를 먹는 풍습을 아직도 지키고 있다.
개고기를 먹으면 비문명일까? 각자의 문화는 다르다. 다르다고 열등한 것은 아니다. 참고로, 필자는 개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개고기를 “단”고기라 부른다. 정겨운 표현이 아닌가?
#1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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