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이해와 오해 (125)  4월19일에 읽는 세 편의 글

입력 : 2021-04-23 06:28:58
수정 : 0000-00-00 00:00:00

이해와 오해 (125) 

419일에 읽는 세 편의 글

                                                      저술가  박종일

 

 

 

이승만을 신격화했던 온갖 슬프도록 우스꽝스러운 작태는 여기서 열거할 시간도 지면도 없다. 1960년 봄에 분노한 시민들이 맨손으로 이 늙은 독재자를 몰아낸 사건을 총칭하여 4.19(혁명, 의거, 운동)라 부른다. 이 사건에서 진압경찰의 발포로 숨진 사람이 186명인데 절대다수가 중고등학생들이었다(대학생 22, 고등학생 36, ·중학생 19).

 

한성여중 2학년생이던 진영숙(陳英淑1946~1960)419일 오후 미아리고개에서 시위 중 총탄에 희생된다. 그가 시위대에 합류하기 전 집에 들려 홀어머니에게 남긴 메모의 전문이 다음과 같다(어머니는 동대문시장에서 가게를 하셨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마는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있습니다. 너무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이만 그치겠습니다.”

 

419에 이승만이 하야를 발표한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426일에 시인 김수영(金洙暎, 1921~1968)<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는 제목의 시를 발표한다.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조용히 개굴창에 넣고/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웅장한/기념탑을 세우자/아아 어서 썩어 빠진 어제와 결별하자/이제야말로 아무 두려움 없이/그놈의 사진을 태워도 좋다/협잡과 아부와 무수한 악독의 상징인/지긋지긋한 그놈의 미소하는 사진을/대한민국의 방방곡곡에 안 붙는 곳이 없는/그놈의 점잖은 얼굴의 사진을/동회란 동회에서 시청이란 시청에서/회사란 회사에서/**단체에서 OO협회에서/하물며는 술집에서 음식점에서 양화점에서/무역상에서 가솔린 스텐드에서/책방에서 학교에서 전국의 초등학교란 초등학교에서/유치원에서/선량한 백성들이 하늘같이 모시고/아침저녁으로 우러러보던 그 사진은/사실은 억압과 폭정의 방패였느니/썩은 놈의 사진이었으니/아아 살인자의 사진이었느니/너도 나도 누나도 언니도 어머니도/철수도 용식이도 미스터 강도 유중사도/강중령도 그놈의 속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무서워서 편리하게 살기 위해서/빨갱이라고 할까 보아 무서워서/돈을 벌기 위해서는 편리해서/가련한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서/신주처럼 모셔 놓던 의젓한 얼굴의/그놈의 속을 창자 밑까지도 다 알고는 있었으나/타성같이 습관같이/그저그저 쉬쉬 하면서/할 말도 다 못하고/기진맥진해서/그저그저 걸어만 두었던/흉악한 그놈의 사진을/오늘은 서슴지 않고 떼어 놓아야 할 날이다/...(6행 생략).../민주주의는 인제는 상식으로 되었다/자유는 이제 상식으로 되었다/아무도 나무랄 사람은 없다/아무도 붙들어 갈 사람은 없다/군대란 군대에서 장학사의 집에서/관공리의 집에서 경찰의 집에서/민주주의를 찾은 나라의 군대의 위병실에서/사단장실에서 정훈감실에서/민주주의를 찾은 나라의 교육가들의 사무실에서/4.19 후의 경찰서에서 파출소에서/민중의 벗인 파출소에서/협잡을 하지 않고 뇌물을 받지 않는/관공리의 집에서/역이란 역에서/아아 그놈의 사진을 떼어 없애야 한다/우선 가까운 곳에서부터/차례차례로/다소곳이/조용하게/미소를 띠우면서/영숙아 기환아 천석아 준이야 만용아/프레지던트 김 미스 리/정순이 박군 정식이/그놈의 사진일랑 소리없이 떼어 치우고/우선 가까운 곳에서부터/차례차례로/다소곳이/조용하게/미소를 띄우면서/극악무도한 소름이 더덕더덕 끼치는/그놈의 사진일랑 소리없이/떼어 치우고

 

수유리 4.19묘지에 세워진 <4월 학생 혁명탑>에 새겨진 문장 일부를 옮겨본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의 혈관 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수만 명 학생 대열은....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피어나리라.”

 

 #126호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