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오해 (123) 조선족 여성 항일혁명투사 이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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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123)
조선족 여성 항일혁명투사 이재덕
박종일
이재덕(李在德)은 1917년 평안남도 개천의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1920년에 이재덕 일가는 살길을 찾아 중국 안동으로 건너갔다. 이듬해에 아버지 이상희(李相熙)은 독립운동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된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 옥사했다. 집에는 나이 어린 재덕과 어머니, 할머니만 남았다. 1928년에 일가는 흑룡강성 라북현(蘿北縣) 오동하(梧桐河)에 있는 조선족 마을로 이사하여 소작농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 해 가을, 최용건(崔庸健, 1900~1976, 황포군관학교 교관 출신. 훗날 김일성 집권시 초대 북한 부수상) 등이 그 지역으로 와 조선족 학교를 세우고 항일 근거지를 건설하였다. 열 살이던 이재덕은 이 때 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게 되었고 그의 어머니는 지역 부녀조직의 책임자로 활약했다.
1931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키자 만주지역에서는 항일의 열기가 고조되었고 이재덕도 항일선전대에 참여하였다. 1933년 추석날, 변절자의 밀고로 그의 어머니(김성강金成剛) 등 12명이 살해되었다. 겨우 열여섯 살 소녀인 이재덕은 그 길로 항일유격대에 참가한다. 1934년 봄, 이재덕과 여성 동지들은 탕원현(湯原縣) 산골짜기에 후방 피복공장을 세우고 유격대를 위한 군복을 만들고 부상병 치료도 함께하였다. 1936년 5월(19살), 이재덕은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37년 8월, 당 고위 간부들의 중매로 그는 동북항일연합군제 3군 정치부 선전과장 우보합(于保合, 만주족)과 결혼한다. 결혼식 주례는 주보중(周保中. 당시 길동성 당위원장, 훗날 동북항일연합군 사령관)이었다. 이듬해 5월, 그는 유격대 밀영에서 첫 아이를 출산하였으나 아이는 닷새 만에 영양실조로 죽고 만다(1940년 8월에 둘째 아들을 낳아 소련군 유아원으로 보냈으나 전란 통에 연락이 끊겨 결국 찾지 못했다. 1943년 셋째 딸을 출산했을 때는 항일연합군 부대의 대대장이던 김일성이 산후조리용으로 연어를 선물로 보내왔다. 김일성 부부와의 인연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1940년, 이재덕은 당의 파견으로 소련으로 가 무선전신 기술을 배웠고 1941년에 돌아와 항일연합군 88여단의 무선전신 수발신을 담당했다. 1945년 3월부터 이재덕은 길림군구 무전실을 거쳐 연변조선족 간부학교 조직과 과장, 길림성 부녀연합회 주임으로 일했고 1949년에는 호북성 의창시(宜昌市) 부녀연합회 설립 준비처 주임이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이 수립된 뒤 이재덕은 1951년 1월부터 1955년까지 국무원 비서처에서 일했고(주은래 총리의 공인公印 담당. 이때 그는 비서처의 유일한 “외국인”이었고 1953년에 중국국적을 취득했다), 1955년 이후로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판공청(우리나라의 국회사무처에 해당)에서 비서, 부과장, 직속유치원장, 도서관 주임으로 일했다.
1964년, 이재덕은 제3기 전국인민대표(우리나라의 국회의원에 해당)가 되었다. 문화대혁명 기간(1965~1975년)에는 소련의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다가 1979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판공청 비서국 부국장으로 복귀 한 후 같은 해 9월에 은퇴하였다.
이재덕은 1948년 8월, 조선족 자치주 대표단의 일원으로서 북한정권 수립기념식에 참석하여 김일성부부를 다시 만났다. 1957년에는 북한 국가주석 김일성이 북경을 공식 방문했을 때 주은래 총리가 주최한 환영만찬 행사에 초청받아 김일성을 만났다. 1992년에 그는 김일성의 팔순잔치에 초청받아 평양을 방문하였고 1994년 7월에는 김일성의 장례식에도 공식 귀빈으로서 참석했다. 러시아 대통령 메드베데프로부터는 특별훈장을 받았다. 2019년 8월 26일 그가 사망하자 북한 지도자 김정은은 조화와 조전을 보내 경의를 표했다. 그는 중국, 북한 소련 세 나라로부터 인정받은 항일혁명투사였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한 조선족 항일혁명투사들의 공적이 정치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평가받는 시대가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그는 회고록 “송산풍설정(松山風雪情)”을 남겼다(2013년, 수정판, 북경 인민출판사).
#1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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