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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121)  퍼스트레이디

입력 : 2021-03-14 06:27:54
수정 : 0000-00-00 00:00:00

이해와 오해 (121) 

퍼스트레이디

박종일

 

 

미국 대통령의 아내를 퍼스트레이디(First Lady of the United States)”라 부른다. 퍼스트레이디는 비공식 존칭일 뿐이며 역할에 관한 공식 규정은 없다.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은 대통령의 아내에서부터 출발하여 시대에 따라 백악관 내부 관리, 정치운동, 공식행사에서 대통령의 대리, 심지어 여론과 패션의 주도자로 확대되어왔다. 36대 대통령(린든 존슨)의 아내 버드 존슨은 미국의 어떤 법령에도 퍼스트레이디의 직책이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일단 퍼스트레이디가 된 후에는 원하기만 하면 지휘대에 설 수 있다고 하였다. 42대 대통령(빌 클린턴)의 아내 힐러리는 퍼스트레이디였던 경력을 바탕으로 하여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다.

 

2대 대통령(존 애덤스)의 아내 아비게일은 백악관에 들어간 첫 번째 퍼스트레이디였다. 4대 대통령(제임스 메디슨)의 아내 돌리는 영국군이 백악관을 침입했을 때(나폴레옹 전쟁 때 영국은 프랑스와 무역거래를 한 미국을 적국으로 간주하고 공격했다) 국보인 독립선언서를 안전하게 피신시켰다. 9대 대통령(윌리엄 헤리슨)의 아내 캐롤라인은 백악관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웠고 대학 후원금(존스 홉킨스 의대)을 처음으로 모금한(여학생 입학허용을 조건으로) 퍼스트 레이디였다. 10대 대통령(존 타일러)의 아내 줄리아는 처음으로 백악관 안에서 열리는 사교모임을 홍보하는 대변인을 두었고 이 직책은 진화하여 훗날 백악관 대변인이 되었다. 11대 대통령(제임스 폴크)의 아내 새라는 대통령 연설문 원고까지 작성하는 유능한 정치적 참모였다. 31대 대통령(허버트 후버)의 아내 루는 백악관 안에서 방송연설을 한 첫 번째 퍼스트레이디였다. 이 연설에서 그는 빈곤가정을 위한 식료품과 의복 모으기에 여성들이 나서라고 촉구했다.

 

 

32대 대통령(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아내 엘리노어는 1945년에 미국대표로서 UN인권위원회 의장을 맡아 세계인권선언기초작업을 지휘했다. 많은 사람들이 UN회원국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인권선언을 기초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19481210세계인권선언은 표결을 통해 UN의 공식문건으로 채택되었다(찬성 48, 기권 8, 반대 0). 재미있는 것은 이 선언의 초고에는 모든 사람(All men)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란 구절이 있었다. 인도의 (여성)대표가 남성만을 위한 인권선언이라며 이의를 제기하자 엘리노어는 미국의 독립선언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고 반론했다(결국 “men”“human beings”로 고쳐졌다).

퍼스트레이디란 미국 대통령의 아내를 가리키는 미국식 호칭이지만 지금은 대통령제를 채택한 모든 나라가 사용하고 있다. 미국에서 퍼스트레이디라고 불렸던 여성이 모두가 대통령의 아내는 아니었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상처하고 19년째 독신이었다. 백악관에서 연회가 열릴 때 초청받은 여성 손님들이 여주인이 없어 불편을 느끼고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이를 알아챈 제퍼슨이 국무장관 제임스 메디슨의 부인에게 백악관 연회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7대 앤드류 잭슨 때에 퍼스트레이디는 처음에는 대통령의 조카딸이었다가 딸이 역할을 이어받았다. 8대 마틴 반 뷰런의 퍼스트레이디는 대통령의 며느리였다. 15대 제임스 부케넌의 퍼스트레이디는 그의 조카딸이었다. 21대 체스터 아서 때는 그의 여동생이 퍼스트레이디를 대신했다. 45대 도널드 트럼프의 퍼스트레이디는 미국시민으로 태어나지 않은 최초의 여성이다(아마도).

그러면 세컨드레이디도 있는가? 있다. 대통령의 측실이 아니라 부통령의 아내를 세컨드레이디라고 한다. 역시 공식호칭은 아니다. 그런데 여성이 대통령이 되면 그의 남편을 뭐라고 불러야할까?

 

 #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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