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오해 [113]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도서관 천일각(天一閣)
수정 : 2020-05-17 15:47:40
이해와 오해 [113]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도서관 천일각(天一閣)
저술가 박종일
▲ 1933년 천일각 재건 당시의 사진. 장서는 외부로 옮겨졌으며, 정부는 군대를 파견하여 수비하였다.
옛말에 “책이 없으면 천하가 어지러워진다”고 하였다. 책을 모아두는 장서각은 교회(사원)이면서 병원이다. 중국 절강(浙江)성 영파(寧波)시는 중국의 국가대표급 문화유산을 두 가지 갖고 있다. 하나는 도시 자체가 우리가 잘 아는 정화 함대의 모항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대표적인 장서각인 천일각이다.
1561~66년에 지어진 천일각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잘 보존된 장서각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장서각의 창건자는 명 왕조 때에 병부시랑을 지낸 유명한 장서가 범흠(范欽)이다. 범흠은 평생 책 모으기를 좋아했다. 천일각을 세울 때 장서가 이미 7만 권이었다. 건륭(乾隆) 37년(서기 1772년)에 『사고전서(四庫全書)』 편찬을 시작할 때 범흠의 8대손 범무주(范懋柱)가 집안의 소장서 638종을 진상하여 황제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사고전서』를 보관하는 장서각의 구조는 천일각을 그대로 모방하였다.
범흠은 장서를 보존하기 위해 엄격한 가족규칙을 만들었다. 후손들이 책을 나누어 가지지 말 것, 장서각 밖으로 책을 내어가지 말 것, 여자는 장서각에 출입시키기 말 것.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장서가 흩어지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가경(嘉慶) 13년(1808년)에 장서가 4,094종 5만3천 권이었다. 아편전쟁 시기에 영국군이 수 십 종의 희귀 고전적을 탈취해갔다. 함풍(咸豐) 연간에는(1851~1861) 도둑이 수많은 장서를 훔쳐가서 프랑스 선교사에게 팔아먹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환란을 겪었고 1940년에 남은 책이 1,591종 1만3천여 권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중국 정부는 천일각을 보호하기 위해 전문 관리기구를 설치하고 산실된 책 3천여 권을 찾아내어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한편으로는 현지 장서가들로부터 고전적을 기증받아 수장하였다. 현재 천일각이 소장한 고전적은 8만여 권에 이른다.
천일각이란 이름은 한나라 정현이 쓴 역경주에 나오는 “천일생수(天一生水)”, 즉 “하늘이 물을 내고 물은 불을 이긴다”는 구절에서 따왔으니 장서각의 화재를 경계한다는 뜻이다. 강희(康熙) 4년(1665)에 범흠의 증손 범문광(范文光)이 장서각 경내 곳곳에 연못을 파고 근처 호수의 물을 끌어들였다. 천일각은 장서의 내용과 규모뿐만 아니라 중국식 조경의 뛰어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천일각은 중국의 현존하는 가족도서관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이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3대 가족 도서관 가운데 하나이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3대 가족 도서관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이탈리아의 귀족 말라테스타(?—1465)가 1452년에 북부 이탈리아 체세나(Cesena)에 세운 말라테스티아나 도서관(Biblioteca Malatestiana). 둘째는 피렌체공화국의 통치자 카시모 메디치(1389-1464)와 그의 손자 로렌조 메디치가 세운 메디치-로렌초도서관. 셋째는 천일각이다.
천일각만큼의 규모와 역사는 못되지만 중국의 웬만한 도시에는 이름난 가족 장서각이 하나쯤은 다 있다. 책이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에 천일각을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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