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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94] 한복의 변용(變容)

입력 : 2018-10-22 18:02:34
수정 : 2019-05-10 10:20:02

이해와 오해 [94]

한복의 변용(變容)

지혜의 숲 권독사 박종일
 

개화기의 한복 
 

아주 오랫만에 경복궁에 갔더니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득하였다. 한복을 입으면 고궁 입장료를 무료로 해주는 정책 때문에 관광객들이 고궁 근처 한복 대여점에서 빌려 입고 오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데 그들이 입은 한복이라는 게 한복의 흉내를 낸 듯하나 전혀 모양이 생소하고 때로는 괴상하기까지 하여 민망스러운 지경이다.

1910년에 일제의 식민지가 된 뒤로 우리나라에서는 양복이 서서히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식민지배에 대한 반발심에서 양복이나 일본 복장을 배척하면서 한복을 개량하여 입으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1920년대 이후 민족운동의 한 부분으로서 여성교육운동이 강조되었고 이때 신여성이 등장했다. 신여성의 대표적인 패션은 챙머리 헤어스타일에 발목까지 올라간 검정통치마였다. 최초로 이 패션을 선보인 여성이 1907년 동경에서 귀국한 유학생 최활란(崔活蘭)이라고 한다.

 

신여성복장


1920년대에 들어와 양장 셔츠가 소개되면서 전통적인 한복 속옷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속적삼은 여성용 셔츠로 대체되었다. 팬티가 등장하자 남성 속옷인 속적삼, 속고의와 여성 속옷인 속속곳과 다리속곳이 사라지고 팬티 위에 단속곳만 입게 되었다. 짧은 치마를 입는 신여성은 너른바지, 바지, 다리속곳, 속속곳, 단속곳을 벗어던져 버리고 사루마다라 불리는 짧은 무명팬티를 입었다. 속옷이 변화하면서 어깨허리 속치마가 등장했다. 이것은 1920년대에 이화학당 학생들이 입기 시작했다고 하며 조끼허리로 변형되어 속치마뿐만 아니라 치마에도 적용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조끼가 등장하게 되는데, 조끼는 한복과 양복이 절충된 상의이다. 전통 한복에서는 휴대품을 지니고 다닐 호주머니가 없어 주머니를 따로 만들어 허리에 차고 다녔다. 양복의 보급이 점차 늘어나면서 양복의 기능성을 받아들이면서 한복의 선을 살릴 수 있는, 호주머니가 딸린 조끼가 나타난 것이다.

또한 1920년대에는 장갑이 들어오면서 전통 겨울용 방한구인 토시가 자취를 감추었고,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행전(각반)도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끝내 사라졌다. 양말(洋襪, 서양버선이란 뜻)이 등장하면서 버선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이 시기의 남녀 복장의 가장 특징적인 변화는 고무신의 등장이다. 고무신은 갖신, 짚신, 미투리, 나막신을 대체하며 한국 특유의 신발로 자리 잡게 된다(이제는 이 고무신도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렸지만). 신여성들은 경제화라 불리든 운동화나 구두를 신기도 했다.

1930년대에 들어와 일제는 전시경제체제를 만들어나갔다. 섬유공업도 군수산업에 예속되면서 직물 배급제가 시작되었다. 남자는 국방색 국민복을 입고 빡빡머리에 전투모를 써야 했다. 여자들에게도 한복치마 입기가 금지되었고 노동하기에 편한 일본식 몸빼바지가 강요되었다. 당시 한국여성들은 저고리 밑에 몸빼를 입자 허리를 가릴 수가 없어 곤혹스러워 했다. 몸빼는 오늘날까지도 한국여성의 주요(?)’ 패션의 하나로서 군림하고 있다. 1940년대에 들어와서는 몸빼는 여학생의 엄연한 교복으로까지 격상되었다.

 

한복의 칼러 


해방이 되자 한복도 해방되었다. 오래 동안 입지 못했던 한복이 다시 표준 패션으로 부활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영향이 사회전반을 압도하기 시작하면서 양장이 새로운 주류로 자리 잡았고 한복은 빈민, 접객업소 (여성)종사자, 새로운 지배질서에 저항하는 계층의 상징이 되었다. 1950년대 초반의 구호물자는 한복을 양장으로 변화시키는 주요 동력이었다. 1950년대 후반에는 한복과 양장의 착용비율이 엇비슷해졌다.

1960년대에는 TV가 보급되고 복장은 급격하게 패션으로 변환하였다. 1966년에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메리 퀸트가 미니스커트를 발표하였고 그 다음 해에 한국에도 미니스커트가 들어왔다. 한국에서 미니스커트를 맨 먼저 입은 인물은 가수 윤복희(尹福姬)였다. 이제 한복은 의례복으로 전락하고 만다.

근래에 한국의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한복의 세계화를 꿈꾸며 활동하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는 근본에 대한 명확한 인식 위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출처불명의, 기괴한, 망측스러운, 우스꽝스러운 한복은 한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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