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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오해 [90]  역사는 흐른다 ...판박이 역사

입력 : 2018-06-29 11:25:21
수정 : 2018-07-10 18:49:29

이해와 오해 [90]

  역사는 흐른다

    판박이 역사

 

박종일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서사(誓詞)’라는 것이 있었다. 일제가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강요한 여러 정책(신사 참배, 궁성 요배, 조선어 사용금지, 창씨개명, 학술·언론 단체 해산)의 하나로서 총독부 학무국에서 1937년에 제정하여 조선인에게 외우도록 강요한 맹세문이다. 이 문장은 모든 행사에서 낭독하게 하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우리는 황국신민(皇國臣民)이다. 충성으로서 군국(君國)에 보답한다. 2.우리 황국신민은 신애협력(信愛協力)하여 단결을 굳게 한다. 3.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여 힘을 길러 황도(皇道)를 선양한다.”

1948년에 남쪽과 북쪽에 각기 정권이 세워졌다. 남쪽은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이념으로서 반공을 내세우고 통일의 방안은 무력을 동원한 북진통일을 내세웠다. 이런 이념을 국민들에게 정신 속에 주입시키기 위해 일제 강점기의 황국신민의 서사를 모방한 우리의 맹세라는 문장을 만들었다. ‘우리의 맹세19497월에 문교부에서 제정하였다. 이 문장은 교과서는 물론 모든 서적 뒤에 빠짐없이 인쇄되었고 각급 학교 학생들은 모두 이를 암기해야만 했다. 19604.19 혁명을 계기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면서 폐지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 딸,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자. 2. 우리는 강철같이 단결하여 공산침략자를 쳐부수자. 3. 우리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날리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

명치유신을 성공시킨 일본의 군부정치 세력은 천황제를 바탕으로 하여 대외팽창 지향적인 강력한 국수주의 국가를 추구하였다. 국민을 이런 체제의 충실한 부속품으로 만들겠다는 통치철학을 밝힌 문장이 1890년 메이지 일왕의 이름으로 발표된 교육칙어이다. ‘칙어는 일본의 각 학교로 통지되었고 각종 국가 관련 행사에서 반드시 낭독하도록 하였다.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도 교육칙어를 조선 교육에 적용해 모든 행사에서 낭독하도록 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짐이 생각하건대 황조황종(皇祖皇宗) 이 나라를 열러 굉원(宏遠)한 덕을 세움이 심후(深厚)하도다. 우리 신민이 지극한 충과 효로써 억조창생(億兆蒼生)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 대대손손 그 아름다움을 다하게 하는 것이 우리 국체(國體)의 정화(精華)인 바 교육의 연원 또한 여기에 있을 터이다. 그대들 신민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하며, 부부 서로 화목하고 붕우 서로 신뢰하며, 스스로 삼가 절도를 지키고 박애를 여러 사람에게 끼치며, 학문을 닦고 기능을 익힘으로써 지능을 계발하고 훌륭한 인격을 성취하며, 나아가 공익에 널리 이바지 하고 세상의 의무를 넓히며, 언제나 국헌을 무겁게 여겨 국법을 준수해야 하며, 일단 국가에 위급한 일이 생길 경우에는 의용(義勇)을 다하며 공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천지와 더불어 무궁할 황운(皇運)을 부익(扶翼)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그대들은 짐의 충량한 신민이 될 뿐만 아니라 족히 그대들 선조의 유풍(遺風)을 현창(顯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도는 실로 우리 황조황종의 유훈(遺訓)으로 자손인 천황과 신민이 함께 준수해야 할 것들이다. 이는 고금을 통하여 오류가 없으며, 이를 중외(中外)에 베풀더라도 도리에 어긋나는 바가 없다. 짐은 그대들 신민과 더불어 이를 항상 잊지 않고 지켜서 모두 한 결 같이 덕을 닦기를 바라는 바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정통성의 약점을 가리기 위해 경제개발을 국가 지상목표로 내세웠다. 어떤 독재적 통치행위도 이 목표를 위해 미화하고, 국가의 모든 자원과 인력을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동원하고, 모든 국민의 의식을 이 목표를 향해 통일시키기 위해 대통령특별지시로 1968년에 국민교육헌장이 제정되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이 문장이 실렸고 대학 입시에도 관련문제가 반드시 출제되도록 하였다. 1993년까지 매년 교육부에서 주관하여 제정 기념식이 열렸다. 1994년부터 기념식행사는 개최하지 않았으며 이후 초··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국민교육헌장이 삭제되었다. 200311월에 대통령령으로 헌장선포기념일이 폐지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1968. 12. 5 대통령 박정희.”(‘헌장이 대통령 이름으로 반포되었음을 주목하라!)

식민종주국이 식민지에 강요했던 서사교육칙어가 식민지를 벗어나 독립했다는 나라의 맹세교육헌장을 만든 논리와 적용방식에서 너무 닮지 않았는가? 반성하고 정리하지 않으면 역사는 되풀이 된다.

참고로, ‘황국신민의 서사를 초안한 이각종(李覺鍾, 일본식 이름: 靑山覺鍾, 1888~ 1968)1949년에 반민특위에 체포되었다가 재판 과정에서 일본의 패망 이후에 생긴 충격으로 정신이상 상태가 된 것으로 판정이 나면서 풀려나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국민교육헌장작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박종홍(朴鍾鴻, 1903~1976)은 경성제국대학 출신이며 서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한양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학술원 종신회원, 철학회 회장, 한국사상연구회 회장, 대통령 교육문화담당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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