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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에세이] 녹즙 배달 - 발바닥으로 일하는 거리에서

입력 : 2015-09-11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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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즙 배달 - 발바닥으로 일하는 거리에서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녹즙을 배달한 지 한 달이 됐다. 아침잠이 많고 늦장을 부리는 습관이 있어 고치고 싶었는데 그동안 결심이 늘 작심삼일이었다.



 



일을 하게 되니 책임감 때문에 5시30분이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신기한 일이다. 1시까지 다섯 시간 일을 하는데 주로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서 남들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처음에는 일이 몸에 익숙하지 않아 잇몸이 들떠 밥을 씹지 못했다. 피곤해 집에 돌아와서는 엎드려 아들과 보드게임을 하다 잠들기도 했다.



 



아이가 아침에 엄마와 헤어지는 것을 힘들어 하거나 몸이 아플 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프건 집안에 사정이 있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시간에 녹즙은 배달해야 했다. 일하는 시간에 차 사고를 내든 당하든 모두 본인의 책임, 무슨 일이 있어도 녹즙은 오전 중에 갖다 주어야한다. 이 일을 하면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하는 동안 아침밥을 먹고 아이가 학교에 가는 모습, 학부모 참관 수업과 운동회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할 거라고 했다. 기름 값을 빼면 시간당 최저 임금. 고객이 말도 없이 휴가를 가면 남은 녹즙은 고스란히 본인의 몫이었다. 배달을 마치고도 개당 2,000원이 넘는 녹즙이 한 두 개씩 꼭 남았다.



 



어느 날은 양배추녹즙 가격이 300원 오른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분개한 시 공무원이 주문을 끊었다. 일한 지 얼마 안 돼 가격이 오른 것을 몰랐지만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집에 돌아와서 속이 끓었다. '월 4만 원짜리 녹즙에 당신은 갑질을 하고 싶은 건가'. 그 공무원의 사소한 분개는 그의 입장에서 정당할 지도 모르지만 속이 상했다. 사정을 자세히 써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 날 만났더니 쌩한 얼굴로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본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 다음 날 애써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더니 미소를 띄고 고개를 살짝 숙인다.



순간 날아간 수익금 만 원짜리 고객이 아니라 사람으로 돌아오는 시 공무원. 종일 마음이 편하고 가볍다. 오고 가는 순간의 감정에 흔들림 없는 평정심을 붓다는 말하지만 관계를 떠나 홀로 청정한 마음이란 얼마나 허약한가.



 



얼굴 없는 상품과 얼굴 없는 소비로 이뤄지는 일에도 돈보다 앞서 존재하는 사람과의 관계. 상품을 매개로 한 관계에서 사람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발바닥으로 일하는 거리에서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되는 녹즙 배달. 사장은 돈을 보라지만 사람이 먼저 보이니 아마 이 일로 돈 벌기는 어려울 것 같다.



 



 



글 정연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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