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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에세이] 통일의병대회를 다녀와서

입력 : 2015-10-12 12:49:00
수정 : 0000-00-00 00:00:00

통일의병대회를 다녀와서



 





▲‘칠백의사순의탑’에서 ‘평화통일기원제’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진정한 의병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비로소 도래했다.’ 충남 금산의 칠백의총과 대전에서 열린 통일의병대회를 다녀오면서 느낀 소감은 한마디로 ‘의병 필요성의 공감’이었다.



 



대한민국의 초고속 경제성장. 나무가 크면 그림자가 크다고, 고속성장의 이면에는 성장의 크기만한 아픔이 드리우게 마련이다. 그걸 나는 흔히 ‘성장통’이라고 여겨 왔고 그 ‘성장통’은 장차 무난히 해소될 것이라 낙관했다. 왜냐하면,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위대한 우리 민족이니 현재 처해진 남북 대치 정국도 홍역은 치르겠지만, 어렵지 않게 헤쳐나가리라 여겼다. 그래서 지인의 강권으로 대회에 참가하면서도 내심으로는 도무지 ‘의병’이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시대가 과연 ‘의병’이 필요한 때인가? 아무래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의병’이라는 이름으로 뭉친다 한들 아무런 권력이나 자금 없는 상황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다고 판단했다.



 



아침나절 법륜스님을 만나고, 칠백의총을 참배하면서 머리로 살아온 시간을 반성했다. 의병 칠백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는 무덤은 머릿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현장이었고, 그 현장은 내게 머리로만 살지 말라며 호되게 꾸짖었다.



 



‘칠백의사순의탑’에서 열린 ‘평화통일기원제’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하늘에 제사 드린다는 ‘천제 형식’을 현대적으로 살려 진행되었는데 환인, 환웅, 단군왕검, 해모수, 동명성왕과 칠백의병의 위패를 모신 제사는 처음이었다. 그래, 우리가 누구였던가. 어디서 났고, 어디에서 자랐던가. 조상이 없는 민족이 어디 있을 쏜 가. 조상을 기억하는 민족이라면 자기 개인의 이익에 눈 멀어 매국하는 따위의 한심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 아니던가.



 



찹쌀밥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대전 가오중학교 실내체육관으로 이동해 제1회 통일의병대회가 열렸다.



 



통일의병 뱃지를 다는 의식을 하고, 이어서 통일의병이 된 230명이 ‘내가 통일의병이 된 이유’와 ‘통일의병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2가지 주제로 20초 동안 발표하는 ‘20초 스피치’ 시간이 있었다. 2시간 가량 발표시간이 흘렀지만 모두들 집중해서 들었다.



 



이날 행사의 백미는 솔직담백한 법륜스님의 대회사였다. 차분한 어조, 흔들림 없는 감정, 물 흐르는 듯한 말씀에서는 기운이 넘쳤다. 법륜스님의 말씀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으니 우리가 의병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식의 어리숙함은 없었다. 국내외 문제를 차근차근 짚어가면서, 의병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길을 제시했다.



 



저마다 느낀 바가 다르겠지만, 내게 가장 깊이 다가온 말씀이 있었다. “각자가 좀 더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나야 위기에 빠진 나라를 제대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통일의병 여러분. 우리 모두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길 기원합니다. 한상우 통일의병 432번



 



 





▲한상우 통일의병



통일시민학교 고양파주 1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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