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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책 되새기기]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책,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

입력 : 2018-04-26 11:29:00
수정 : 2019-09-05 08:19:05

[지난책 되새기기]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책,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

 

 

<강아지똥>(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 그림책 표지를 처음 봤을 때 제 눈에는 그저 똥 누는 개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다른 것을 읽어냅니다. 덩치도 작고 힘도 약한 강아지는 똥을 누는 순간에 혹여 누군가 자신을 위협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주변 돌담은 더욱 거대하고 강아지는 더욱 초라합니다. 이런 설명을 듣고 나면 그제서야 눈이 열립니다. 

더럽다는 이유로 천대받는 강아지똥은 서럽고 외롭습니다. 봄비 오는 날, 민들레 싹이 강아지똥에게 예쁜 꽃을 피울 거름이 돼 달라고 부탁합니다. 강아지똥은 너무나 기뻐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습니다. 사흘동안 내린 비에 강아지똥은 온 몸이 잘게 부서져 땅속으로 스며듭니다. 이윽고 민들레 뿌리로 흡수돼 민들레 꽃으로 피어납니다. 

가장 낮은 곳의 존재도 진정 소중한 존재이며, 공감과 사랑을 통해 또다른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주제를 간결하고도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삶은 가난과 질병의 연속이었습니다. 집이 가난해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했습니다. 스무 살 무렵 이미 늑막염과 폐결핵 등으로 온 몸이 망가졌고 평생토록 소변주머니를 달고 사셨습니다. 서른 한 살, 작은 예배당의 종치기가 되어 흙담집에서 기거하는데 이때부터 병마와 싸우면서도 끊임없이 글을 썼고 마침내 한국을 대표하는 동화 작가가 되셨습니다. <강아지똥>은 69년에 발표한 데뷔작이며 정승각 화백의 그림과 만나 96년에 출간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책이 되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두 해 전에 남긴 유언장 마지막 대목을 옮겨봅니다. 환생하셨을 지 아니면 민들레 꽃이나 별이 되셨을 지 궁금합니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에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유형선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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