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책꽂이] 그 사랑 놓치지 마라 (이해인,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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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책꽂이] 그 사랑 놓치지 마라 (이해인, 마음산책)
아내에게 책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해인 수녀님 저자 친필 서명도 받았습니다. 수녀님의 서명은 화려합니다. 빨강색과 초록색 색연필로 꽃이 피고 보라색 색연필로 길이 났습니다. ‘사랑은 외로운 투쟁’이란 문구와 동백꽃이 새겨진 스티커도 붙었고 단풍잎이 곱게 물든 나뭇가지 스티커도 붙었습니다. 꽃밭처럼 어여쁜 저자 서명을 이리 저리 둘러보며 저는 일순간 마흔일곱 살 아재가 아니라 성당에서 성가를 목청껏 노래하던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수녀님 시 ‘황홀한 고백’에 곡을 붙인 ‘사랑한다는 말은’이라는 성가를 고등학생 때 성당에서 친구들과 입을 모아 늘 불렀습니다. 한번은 군대 휴가 나왔을 때 대전역 버스정류장에서 수녀님을 우연히 뵈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 맞으시죠?” 질문에 “맞습니다!”라며 빙그레 웃으셨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2011년, 용산역 어느 카페에서 수녀님이 옆 테이블에 계시기에 헐레벌떡 뛰어가 수녀님 책을 사들고 와서는 서명 받았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도 제 책장에는 중고책방에서 하나 둘 사 모은 수녀님의 여러 시집들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에서 공(空)을 뜻하는 ‘수냐타(sunyata)’는 원래 ‘없음’이 아니라 ‘충만’을 의미합니다. 너무나 충만하기에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치 않아서 다시 공(空)의 의미가 되었습니다. 수녀님의 이번 책은 시와 함께 산문이 실려서 시를 쓴 사연과 시에 담은 마음을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수녀님의 시들은 여러 사람들의 상실과 절망과 아픔을 위로하는 글이었습니다. 수녀님 자신도 암 투병하신지 십년이 넘었습니다. 수녀님은 아프고 지친 존재들을 위로하려고 사랑과 기쁨과 희망으로 충만한 시어들을 사십년 이상 올곧이 쏟아 내셨습니다. 수녀님의 시를 읽는 사람들은 충만한 시어들 사이로 비워지고 또 비워진 수녀님의 마음도 함께 읽을 수 있었습니다.
수녀님은 넒고 어진 바다 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해인(海仁)’을 필명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수녀님의 시집을 읽으면 큰 바다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열리나 봅니다.
유형선 (‘중1 독서습관’ 저자)
#1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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