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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개혁, 사회적 논의 시작할 때”

입력 : 2017-04-07 1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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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는 망자의 공간이면서도 산자와 만나는 곳, 공동묘지 부지 재구성해야

 

한상운: 잘 사는 것(웰빙)만큼이나 차분하고 아름다운 죽음(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죽은 이후의 모습에 대한 고민도 크게 바뀌고 있다. 자손들에게 성묘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아예 ‘묘’ 자체를 두지 않으려는 생각들도 많아지고 있고, 떠난 이를 기억할 곳은 두되, 유족과 자손들이 마치 소풍이나 나들이 하듯 찾아와 휴식을 겸할 수 있는 추모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고민들이 많아지고 있다.

 

김태복: 묘지라는 곳은 영혼의 안식처이자 고인을 추억하는 그리움의 공간이다. 그런데 이제는 단순히 묫자리와 표지만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묘역과 주변부가 어우러지는 일종의 풍경을 함께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유럽의 도시에서는 근교에서 공원식 묘지인 추모공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묘지가 기피되는 장소로 인식되기 보다는 정서적 위안과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황은주: 묘지는 망자의 공간이면서도 산자와 만나는 곳이고, 현재와 과거 그리고 자연과 도시가 만나는 공간이다. 2000년대 들어 화장 문화가 급격하게 확산돼 현재 화장률 80%대에라는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 이에 한발 더 나아가 수목장 등 자연장 제도가 보편적인 장법으로 정착해 가고 있다.

자연장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전 국토의 묘지화를 조장하는 것도 기존에 봉분묘 중심의 공동묘지를 방관해 온 것 만큼이나 장기적으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문제가 최소화되도록 기존의 공동묘지 부지를 재활용하는 방안을 시급히 논의해야 한다.

 

김태복: 좋은 지적이다. 새로운 자연장묘 부지를 조성하도록 권장하기만 할 게 아니라, 기존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봉분묘 중 중대형 규모 이상으로 모여있는 집단묘지(공동묘지)나 소규모일지라도 예컨대 50기 이상 모여있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작은 공동묘지 터를 중심으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공동묘지 부지를 재구성하는 것에서 진정으로 자연환경을 살리고 국토 이용 효율화를 구할 수 있다는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파주에만 여의도 두세배 크기 공동묘지

 

황은주: 전국에 걸쳐 봉분묘 수가 2100만 기에 이르고, 그 면적이 5천만 국민이 거주하는 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정치에 불과하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개인묘까지 고려한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할 수 있다.

 

김태복: 지금 와있는 이곳 파주시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서울 여의도 크기의 두세 배에 이르는 공동묘지가 존재한다. 소유관계를 따져보면 서울시 소유인 용미리 공동묘지 등 공동공설묘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종교단체 소유 공동묘지, 법인 소유 공동묘지, 종중 소유 공동묘지, 그리고 가족묘 순이라 볼 수 있겠다. 파주가 유독 묘지가 많은 상위권 지역이긴 하지만, 수도권 위성도시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상운: 수도권 과밀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다소 한산했던 공동묘지 부근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묘지와 거주지가 뒤죽박죽 뒤섞여 버렸다. 서로 맞닿아 있으면서도 완전히 이질적이고 혐오스런 공간이 되어 버린 거다. 주목할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해 그 오랜 세월동안 어느 정부 어느 관료 어느 정치인도 문제의 심각성을 주창하지 않았다는 거다. 무지와 무관심이 만들어낸 기형적 결과다.


▲ 탄현면 새꿈터 뒷쪽 야산 공동묘지를 둘러보았다.

 

묘지공원에서 축제하는 프랑스, 예술미까지 곁들인 북유럽 묘지공원

약속장소로 애용되는 편안한 도시숲 공원으로 재탄생시켜야

 

황은주: 기존 공동묘지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적절하지도 않다. 어느 지역도 쉽게 동의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에 있는 상태를 바꾸는 방법을 창안해야 한다. 전국에 걸쳐 공동묘지를 혁신적으로 개조하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유가족에게는 소풍처럼 자주 찾고픈 곳이 되어야 하고, 지역주민들에게도 전혀 거리낌 없이 언제든지 심지어 야간에도 산책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김태복: 스페인의 어느 공동묘지는 유골을 뿌리거나 묻긴 하지만 수목 하나보다는 숲에 집중된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고, 스위스 취리히 시립묘지는 도시와 연접된 숲이면서도 이름표 하나 남기지 않도록 운영하고 있다. 네델란드 마스브리 자연묘지는 묘지숲 속에서 주민들이 숲간담회를 할 수 있는 통나무 회합장 형태도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주에 있는 스코그쉬르코고르덴 묘지공원는 북유럽 숲을 훼손하지 않고 기존 자연풍경에 순응하면서도 품위와 매력적인 예술적 가치를 구현한 묘지공원 모델로도 꼽힌다. 스웨덴 스톡홀롬시에는 또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화장시설이 있다. 스톡홀름시가 1914년 대규모 국제 공모전을 개최해 젊은 건축가들의 아이디어를 채택, 건립한 스코그쉬르코 고르덴 공원이다. 공원 내에는 북유럽 고전주의와 그리스식 건축 양식을 반영해 조성한 화장 시설과 예배당들이 들어서 있다. 스웨덴 유명 건축가들이 설계한 친환경 화장장을 건립하기도 한다. 삭막한 우리나라 묘지 모습에 영감을 줄 해외 사례들이 매우 많다. 적지 않다.



 

공동묘지 경관 재구성, 건축미학과 예술가 협력 필요

 

황은주: 공동묘지 경관 개선 프로젝트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파주시와 서울시가 용미리 묘역에 대한 개선 합의를 추진했던 것도 미흡하지만 긍정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자체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고 재정자립도도 열악한 곳이 많다. 단계적으로 추진되는 것도 너무 지난한 세월이 요구된다. 묘지 연고자들 다수의 대타협을 이뤄낼 수 있는 특별한 법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김태복: 공동묘지 경관을 재구성하는 데 있어서는 이장 비용도 지원해 줘야 하고, 일정한 보상도 따라야 한다. 무연고 묘에 대한 과감한 특별 조치를 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지하 납골당 건설 비용도 들고, 수목종에 대한 의견도 모아져야 한다. 대규모 식목 사업도 전개되어야 하고, 건축미학과 예술가들의 협력도 필요하고, 종합적 측면의 행정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 자립적이고 지속가능한 형태로의 묘지 재구성을 위한 종합적인 국가종합계획과 세부시행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따라서 공동묘지 문제는 국가재정이 대규모 투입되는 등 국책사업으로 추진되는 것이 적합하다.

 

한상운: 현행 「장사 등에 관한 법률」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장사법제와 도시계획법제 사이를 연계하면서도, 공동묘지를 효과적으로 재정비할 수 있는 다부처소관법제, 융합법제, 특별법이 필요하다. 다행히 현재 국회에 박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집단묘지정비및경관개선특별조치법’이 계류되어 있다.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와 심사가 진행되야 할 것이다. 현재 대통령후보들에게도 묘지 개혁에 관한 정책과 철학이 무엇인지 묻고 검증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국토의 효율, 국토 생태계 복원, 생태서비스 효과 얻고,

후손들에게도 짐 되지 않는 사회적 대타협 필요

 

황은주: 한정된 국토자원 속에서 거대하게 형성되어 있는 묘지들을 어떻게 아름답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 하는 국가적 차원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묘지 개혁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때다.

 

김태복: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은 그런대로 한 나라가 융성하기에 모자라지 않는 크기이지만, 인구 5천만 명이 살아가기에는 다소 비좁은 감이 없지 않다. 전국적으로 묘지 위치 이전 등 활발한 공간 재구성 재정비가 이뤄져야 한다. 도시 개발의 장애가 되는 문제를 해소하는 효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동묘지 부지 재구성을 하면서 답답하고 빽빽한 전근대적 형태의 거대도시에 엄청난 생명력을 불어넣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한상운: 산자에게도 힐링과 휴식이 되고, 망자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그윽해지는 그런 아름다운 정원식 묘지공원을 상상해 보자. 조경산업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고, 건축가들에게도 건축미학적 철학을 뽐낼 새로운 공간이 될 것이다. 흔히 묘지를 산소라고도 부르는데, 이런 지속가능한 인문적 상상력을 통해 묘지가 도시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진짜 청정한 산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임현주 기자

 

#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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