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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 과학이야기 (43) - 전곡리 구석기 유물은 왜 유명할까?<2>

입력 : 2017-12-28 16: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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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리 구석기 유물은 왜 유명할까?<2>



(사진 설명_'신의 손'으로 알려진 후지무라 신이치(도호쿠 구석기 문화연구소 부이사장)가 조작된 구석기 유물을 땅에 묻고 있는 모습이 몰래카메라에 잡혔다.)


전곡리의 아슐리안 도끼로 인하여 호모 에렉투스가 지구의 동쪽 끝까지 진출해서 적어도 30만 년 전까지 생존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단단해졌다. ‘북경원인’으로 불리는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이 베이징 인근에서 발견된 것은 1929년이었다. 아프리카를 떠난 그들이 중국까지 온 것도 충격이었지만 한반도까지의 진출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이제는 아무도 의심하게 않게 되었다. 1978년의 일이다. 
그러나 고고학자가 아닌 나에게는 두 가지의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그 첫 번째는 ‘호모 에렉투스’의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180만 년 전에 생겨난 이래로 그 모양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모델의 도끼가 업그레이드 없이 150만 년 동안 사용되었다는 점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비록 엉성해 보이지만 아슐리안 도끼는 첨단 핸드폰과 버금가는 발명품이 분명했다. 이 도끼를 든 호모 에렉투스는 전 지구로 퍼져 나갔으며 아울러 가장 오랜 동안 멸종하지 않았던 신기록을 작성한다. 원숭이보다 뇌가 조금 큰 유인원이 이룬 성과치고는 놀랍다.  실 400만 년 전에 나타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두 발로 걷는 원숭이’의 상태로 도구 없이 200만 년을 살았다. 원숭이에게 도끼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나에게 우주왕복선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과 비슷한 것이 분명하다. 두뇌 중에서 전전두엽의 확장이라는 엄청난 사변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충격은 전곡리의 유물발굴에 대한 일부의 태도였다. 고인류는 언제나 유럽의 몫이었기 때문에 아시아는 소외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전곡리의 돌도끼 발굴에 대한 경향신문의 제목이 ‘아시아의 자존심’이었다. 

이처럼 위대했던 호모 에렉투스의 유적이 한반도에서 발굴되자 늘 한국을 아래로 보던 일본은 더군다나 자존심 이 많이 상했던 것 같다. 갑자기 일본이 분발하면서 70만 년 전의 유물까지 시 리즈로 발굴하는데 성공한다. 그 주인공은 ‘신의 손’ 이라는 별명을 얻은 아마추어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 였다. 그러나 2000년 11월에 조작 현장이 몰래 카메라에 찍혀 ‘구석기 유적 조작’ 사건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후지무라는 유물발굴로 일본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고고학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었기에, 이 일로 인해서 일본의 고고학계도 함께 폭망하게 된다. 민족의 자존심을 고인류의 유적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예고된 불행이다. 그 일은 언제나 아프리카가 승리하게 되어있다. 역사나 유적과 상관없이 우리와 우리민족은 다른 사피엔스의 형제들과 함께 위대할 뿐이다.



과학책을 읽는 보통사람들 회원 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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