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 고양파주 생협] 어묵과 협동조합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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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과 협동조합 민주주의
입김 나오게 추운 날 길에서 만나는 오뎅 포장마차는 반갑다. 넓적한 어묵을 접어 꿰거나 둥그스름한 어묵을 길게 꿰어 다시 국물에 푹 삶으면 우리가 만나는 대표적인 거리 음식이 된다. 리필은 물론이거니와 떡볶이 같이 다른 음식을 주문해도 딸려 나오니 국물 인심 또한 넉넉하다.
내가 가장 많이 먹은 어묵은 도시락 반찬이었을 테지만 기억 속에서 만나는 어묵은 언제나 길거리다. 이렇듯 푹 삶아 내어놓는 오뎅은 허기와 추위를 달래는 잠깐의 간식으로도, 온 가족 둘러앉은 식탁의 메인 요리로도, 퇴근 길 술안주로도 언제나 제격이다.
사시사철 만날 수 있지만 겨울 음식으로 가장 많이 생각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누구는 겨울마다 부산어묵을 주문한다나. 이렇게 반가운 어묵이지만 어느 때인가 한살림 매장에서 자취를 감춘 적이 있다. 그것도 꽤 오랜 기간. 누구는 남획 탓이라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수온이 상승하면서 한류성 어류인 명태가 동해 연안에서 잡히지 않게 되면서다. 지구온난화의 결과였다.
선택지는 한국 원양 어선이 북태평양에서 잡은 명태.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가 자국 외의 원양 어선 할당량을 축소하였고 조업 악화도 이어지면서 어획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른바 한살림 명태 논쟁. 명태 취급을 우선 중단한 상태에서 이사회 차원의 정책 토론은 물론 소식지와 조합원이 참여하는 마을모임, 매장 안 스티커 설문을 통해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다양한 층위의 무성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론을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년 6개월 정도였고 결과는 모두 아는 것처럼 ‘취급’. 외국적 원양 어선에서 어획한 명태를 예외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국내산 취급이라는 한살림 물품 정책이 후퇴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었다. 그 맞은편에 북어와 황태, 명란젓, 창란젓 등 전통적으로 이어져왔던 다양한 명태 음식 문화에 대한 존중과 취급을 원하는 조합원들의 요청이 있었다. 오늘도 한살림 어묵은 따끈한 오뎅이 되어 우리 밥상에 오른다.
각설하고, 어묵과 민주주의가 무슨 상관이냐고? 취급 중단이라는 1년 6개월여의 시간이 잃어버린 기회비용이 아니라 옥신각신하는 와중에 한살림 물품의 가치를, 운동의 정체성을 저마다의 생각으로 만나게 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협동조합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다.
한살림고양파주생협 기획홍보팀
#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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