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나눔이다 - 칠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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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나눔이다]
칠성이
역동적인 싸움소의 강인한 근육과 생생한 표현이 압권
황선미 글 / 김용철 그림 / 사계절 출판사
남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여한다는 소식으로 추위도 한풀 꺾인 듯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림책 ‘칠성이’를 본다. 책상 위에 올려진 그림책 표지를 보는 순간, 앉은 자세를 고친다. 표지 그림부터 긴장감이 예사롭지 않다.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모래판 위에서 육중한 수소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사실적이면서도 세련된 그림은, 싸움소의 거친 숨소리까지 들릴 듯 생생하다. 누구의 작품일까 하고 보니 동화작가 황선미가 글을 썼고, 김용철 화가가 그렸다. 황선미와 김용철이 만나다니. 평소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가까이 하고 아끼는 독자들이라면 대번에 이 만남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겠다.
그림책 ‘칠성이’는 우리의 토종 칡소인 칠성이가 최고의 싸움소로 등극하는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황선미 작가가 말하는 핵심은 ‘두려움에 대한 극복’의 과정이고 절제와 용기다. 그리고 칠성이가 싸움소로서의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는다. 그러나 내가 주목한 것은 황 노인이다. 주인공은 칠성이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황 노인의 집념이다. 즉 싸움은 칠성이가 했지만 황 노인은 현실의 욕망이다. 칠성이 또한 이제부터는 도전자가 아닌 지키는 자의 삶이 놓여 있다. 허나 언젠가는 다른 젊은 소에 의해 밀려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고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우리 그림책계의 백전노장 김용철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그림책 ‘칠성이’가 그림책으로 제대로 구성되기까지의 핵심에는 그의 노련한 손끝이 오롯이 자리한다. 그래서 내용과 형식이 갖추어진 제대로 된 그림책의 전형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림책 작가 김용철이 그간 보여준 표현양식은 모든 사물을 일정하게 양식화하고 변형한, 그래서 상징적 표현전달을 극대화 시킨 시적(詩的) 감흥에 중점을 둔 방식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 책에서 구사한 황색 기조의 사실적 그림들은 놀라웠다. 탄탄한 드로잉의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동적인 싸움소의 강인한 근육과 생생한 표현이 압권이다. 이 모두가 투우장 모래판의 누런 먼지 속에 살아 꿈틀거린다. 현장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걸작이다. 같은 화가로서 은근 질투심을 일게 하는 얄미운 걸작이라니.
인간에게 최고의 순간이라는 것이 있을까. 무슨 말인가. 이를테면 동물의 세계에서 숫사자의 전 생애를 볼 때 최고의 순간은 힘과 민첩성이 최고조에 달하는 4살에서 10살 무렵이 아닐까. 그 시기를 지나면 늙고 점차 힘이 약해져 다른 젊은 사자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이처럼 모든 것이 다 최고의 때가 있는 법이다.
이런 자연의 법칙이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될까? 어차피 한 생애에서 힘과 번식력으로만 따지자면 그렇다고 볼 수밖에 없지만 현실 속 인간세계는 이와 다르다. 수많은 분야가 있으며 거기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활동력 말고도 깊이와 숙련도라는 것이 있어서 그 사람의 숨이 멈추지 않는 한 평가는 단편적일 수는 있어도 총체적일 수는 없다. ‘인생은 마라톤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이 그림책 걸작 ‘칠성이’를 그런 관점으로 이해한다.
화가 김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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