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메아리 [6] 평균 나이 72세, 걸그룹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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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나이 72세, 걸그룹이 떴다
파주시 노인복지회관 ‘희망천사인형극단’
아이들이 부르면, 파주 그 어디든 간다는 평균 나이 72세의 걸그룹이 있다. 목요일 아침, 파주시노인복지관 앞, 다양한 캐릭터 인형과 이동식 무대, 가림막 등을 챙기느라 분주한 희망천사인형극단을 만났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에 인형극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일사불란하게 승합차에 짐을 싣고 공연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희망천사인형극단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일정표를 확인하는 것이다. 인기가 많아서 올 11월까지 공연으로 꽉 차 있다. 빼곡히 적힌 일정표 사이에서 지난번 방문했던 기관이 보이자, 잊지 않고 또 찾아주었다며 반가워하는 모습이 마치 연예인 같다. 엄마인 나보다 파주 내에 있는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더 잘 꿰뚫고 있을 정도로 팬 관리가 철저하다.
이어서 하는 일은 연습.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 남는 자투리 시간조차 연습에 열중한다. 연습을 시작하는 큐 사인은 없다. 한 어르신이 직접 개사한 노래에 맞춰 공연에 선보일 율동과 발성 연습을 시작하면, 그 소리에 누구랄 것 없이 따라서 한다. 한참 손발을 맞춰보더니 이 노래는 솔 톤으로 하는 것이 낫겠다며 의견을 모은다. 목소리 톤부터 손짓 하나까지 세심히 신경 쓰는 이들은 경력 5년 이상의 베테랑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어르신들은 아이들이 기다릴세라 서둘러 공연장으로 이동한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직접 무대를 설치하고 꾸미는 모습은 전문가 못지않다. 그 손길에서 인형극을 대하는 어르신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오늘의 작품은 어린이 성범죄 예방을 위한 창작 인형극 <내 몸은 내가 지켜요>다. 주인공 아롱이와 다롱이 남매가 무대에 보이자 아이들의 응원 박수가 이어진다. 무서운 늑대 아저씨와 여우 아줌마가 등장하자 극에 몰입한 한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흔히 보이는 텔레비전 속 익숙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아이들은 인형극에 푹 빠져든다.
인형극이 끝나자 모두 무대 앞으로 나와 팬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 순간만큼은 여느 걸그룹보다 인기가 많다. 이어지는 교육도 이들의 몫.
“낯선 사람이 내 몸을 만지면 뭐라고 해야 하나요?”
“안돼요! 싫어요!”
아이들은 힘차게 양손을 들어 할머니의 X자 표시를 따라 한다. 마지막 당부의 말을 끝으로 오늘의 공연을 마쳤다. 하지만 다음 공연을 위해서 또 연습하러 가신단다. 어르신들은 잠시도 쉴 새가 없다. 30분의 공연이지만, 아이들을 위한 희망천사인형극단의 마음은 감히 시간으로 따질 수가 없다. 나이를 잊은 듯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 모습에 존경을 표하며, 어르신들의 인생 2막을 응원한다.
이웃들이 전하는 삶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져 희망찬 내일이 되길 바라며
유수연 시민기자
#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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