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신간책꽂이   쇠밥일지-천년공, 펜을 들다

입력 : 2022-10-05 02:37:23
수정 : 0000-00-00 00:00:00

신간책꽂이

쇠밥일지-천년공, 펜을 들다

 

표지가 심상찮다. 용접마스크와 쇠봉보다 용접 불꽃과 연기가 교차하는 흰선들이 눈을 끈다. 용접하는 장면을 대단히 멋지게 찍은 사진같다. 용접을 하는 빨간 목장갑과 용접 불꽃이 반사되는 바닥의 빨간색이 두 번째로 눈을 끈다.

이 책은 마산출신 32세 천현우 노동자가 쓴 산문집이다. 가난하여 진학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담임과 새엄마(이 책에서는 애정이 담뿍 담겨 심여사라 쓴다)의 강제와 권유로 한국폴리텍7대학 창원캠퍼스(창원기능대)에 진학한후, 생활비, 학비와 심여사 병원비 등으로 공장생활, 편의점 알바, 조경일, 용접일을 하는 경험을 풀어낸 책이다.

씨발! 내도 할 만큼 했다! 대체 뭘 더 해야 되는데? 그냥 자살할까?”

무채색의 공단은 땅을 거칠게 후려치는 채찍비에 젖어들고 있었다. 때 탄 솜뭉치 모양의 거먹구름과 퍽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보이지 않는 재벌의 횡포가 아메리카노 정도라면 눈 앞에서 직접 체험하는 차별(정직원과 하청직원의 차별)은 에스프레소 원액만큼 썼다.”

노동으로 일관된 그의 삶이 생생한 언어로 표현된다. 그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감각으로 아무나 표현할 수 없는 노동을 그려낸다.

처음으로 용접면을 쓴 순간, 내 짧은 인식이 얼마나 큰 편견덩어리였는지 깨달았다. 온통 어두운 시야 속, 번뜩이는 불꽃만 남은 망망대해 위에서 치열하며 섬세한 손놀임이 8자를 그리며 흐느적댄다. 천천히 진군하는 용융 풀은 나긋하게 산책 나온 주홍 반딧불이 같다. 목적지에 도달한 불길이 사그라지고, 지나왔던 길엔 위아래 간격이 똑바른 용접 비드만 남아 철판과 철판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이 문장을 보면서 용접공이 예술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생생한 노동현장의 경험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 방송출연, 칼럼 기고, 인터뷰 등등 그의 글이 사회를 울렸다. 이 책의 말미 부분에 있는 청강대 졸업축사는 천현우의 철학을 압축한 산문이다. 축사가 그의 말대로 이룰 것 다 이루어본 사람들의 몫이었기에 일주일을 고민한 축사.

우리 세대는 아주 심각해진 불평등을, 아주 쉽게 체험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중략)...이렇듯 행복은 평범한 사람들이 갇힌 울타리 바깥에 전시되어 있어요. 그럼 우린 어떻게 행복을 찾아야할까요? ....사람마다 각자의 행복 기준이 달라 참고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하면서부터 행복에 가까워졌습니다.” 쇠에다 대고하는 바느질인 용접일을 뒤로하고, 기자로 활동하게 될 천현우씨를 한껏 응원한다.

 

홍예정 자유기고가

#146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