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림고양파주생협] 잡곡雜穀, 잡스럽지 않은 곡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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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곡雜穀, 잡스럽지 않은 곡식
▲사진출처=장성백 (살림이야기)
잡곡은 서럽다. 쌀을 제외한 곡식을 모조리 일러 잡곡이라 했으니, 우선 이름부터 서럽다. 보리쌀 좁쌀 해보아야 그저의 자기 위안일 뿐. 쌀을 향한 눈물겨운 투쟁의 자리에서 주저앉은 이들의 밥상마다 어김없이 오르니, 서열이 있을리 없건만 밥상 위에선 언제나 말석이어 서럽다. 그래도 이 땅을 벗어나 대접받는 잡곡들도 있으니, 밀과 옥수수가 그렇다. 밀이야 한국사회에서도 쌀의 자리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으니 그렇다쳐도,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옥수수가 신성불가침이다. 쌀이 우리 민족의 얼이라면 옥수수는 그이들의 얼인 셈이다.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신화에서는 옥수수에서 사람이 나왔다. 스키마스크를 쓰고 멕시코 치아파스에서 투쟁하던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도 옥수수를 경작하던 원주민, 즉 옥수수 사람의 후손들이다. 중남미 선주민들이 유전자조작옥수수를 반대하는 이유도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곳에서 옥수수는 더 이상 잡雜곡이 아니다.
쌀 자급이 가능하게 되면서 쌀의 대체재인 잡곡의 자리는 더욱 좁아지게 되었다. 쌀이 남아도니 누가 천덕꾸러기 잡곡에 눈길이나 주겠는가? 수매가 안정적인 벼와 달리 판로도 개척하기 어렵고 논농사에 비해 품도 훨씬 많이 들어, 하나둘 잡곡 농사를 기피하게 되었다. 시중에서 친환경은 고사하고 국내산잡곡을 찾기도 어려운 까닭이다. 괴산 지역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잡곡 산지이다. 어렵게 생산한 국산 잡곡을 수매하여 한살림생협, 행복중심생협, 두레생협 등으로 공급하는 괴산잡곡이 있어 그렇다. 괴산잡곡에서는 오랜 준비를 거쳐 2003년 무농약 잡곡을 처음 선보인 이래, 현재는 많은 잡곡을 무농약 이상으로 재배해 공급하고 있기도 하다. 수매한 잡곡 중 좋은 종자를 추려두었다가 보급하기도 한다. 괴산 칠성면 지역에서 주로 잡곡 농사를 짓는 한살림 농부들의 모임인 칠성유기농공동체의 평균 연령은 일흔을 훌쩍 넘었다. 그 잡곡을 마흔 줄인 내가 먹는다. 귀한 이름들 여기에 적어본다. 보리, 밀, 콩, 팥, 기장, 조, 수수, 옥수수, 율무, 녹두, 귀리, 피......
한살림고양파주생협 기획홍보팀장 최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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