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민주주의연대 칼럼 "GDP는 틀렸다"
수정 : 2023-11-17 05:26:59
화폐민주주의연대 칼럼 "GDP는 틀렸다"
박기헌 (화폐민주주의연대 연구위원, 치과의사)
포스트 성장 시대는 이렇게 온다, 대전환과 새로운 번영을 위한 사유 -팀 잭슨-
이 책의 저자, 팀 잭슨은 영국 서리대 교수로 30년 넘게 유한한 지구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번영할 것인지 선구적으로 연구해 왔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 <<성장없는 번영>>은 파이낸셜 타임스 올해의 책으로 선정 되었다. 이 책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성장이 아니라 어떻게 번영할지 사유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동생인 로버트 F. 케네디는 1968년 대통령 출마 연설에서 GDP의 오류를 역설했다. 2차대전 중에 개발된 이 지수는 정부가 전쟁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측정하는 것이었다. 로버트 케네디는 GDP는 잘못된 것의 합일뿐이라고 말한다. GDP에는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는 무급 돌봄노동 등은 빠져있다. 그는 GDP라는 한 가지 수치로는 우리사회의 지혜와 자비심을 측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팀 잭슨도 그의 대표 저서 <<성장 없는 번영>>에서 GDP의 약점을 지적한다. GDP는 양적성장의 지표는 될 수 있어도 번영과 행복의 척도는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빈곤국가에서 성장은 행복과 번영을 주는 진정한 의미가 있지만, GDP가 1만5천 달러에 도달한 뒤에는 소득이 아무리 늘어도 생활만족도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 스티글리츠, 아마르티아 센도 GDP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의 회계방식이 공공서비스의 질에 관해 그 가치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생산되는 것만 고려하고 파괴되는 것은 고려하지 않는 경제발전 지표에 우리의 생각이 갇혀 있다면, 화재나 환경재앙이 발생해도 발전했다고 말하는 GDP 개념만 보고 있다면, 우리는 자신이 진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우리가 건설할 문명의 형태는 그것을 측정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측정 방식이 우리가 사물에 부여하는 가치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GDP는 틀렸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아마르티아 센, 장폴 피투시, 동녘-
‘좋은 삶’에 대한 담론은 무성하지만, 담론들이 실제로 지수화 되어 실생활에 반영되지 못하고 여전히 양적 성장지수인 GDP가 가치척도로 사용되고 있는 점은 안타깝다. 로버트 케네디가 GDP를 비판할 당시, 허먼 데일리(Herman Daly)라는 한 농업경제학자가 <생명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허먼 데일리는 처음에는 성장경제를 신봉했으나, 회의를 느껴 나머지 50여 년간은 생태경제학자로 살다, 2022년 뇌출혈로 8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동기를 직접 들어보자.
운동을 못해 따돌림 당하고 차별받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을 지주로 ‘몸을 쓰는 일은 할 수 없으니 학자가 되자’고 마음먹었다. 양부모는 아주 무리를 해가며 나를 대학에 보내주었다. 미국사회가 종전 후의 호경기로 끓던 시절이었다. ‘경제학은 모두를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 믿고 망설임 없이 전공으로 택했다. 물건은 넘쳐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인은 진정 풍요로워졌는가? 하는 의문이 점점 커지기 시작할 무렵 공해 문제를 날카롭게 고발한 레이첼 카슨 여사의 <<침묵의 봄>>을 읽었고, 아폴로 호가 보내온 푸른 지구의 사진을 보았다. 지구는 거대한 그러나 닫힌 우주선이었다. 인간은 이 유한한 공간에서밖에 살 수 없다. 지구환경을 지키는 것은 목숨을 지키는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했을 때 지구환경을 희생삼아 물질적 번영을 추구하고 있는 경제학자의 한계를 깨닫게 되었다. -허먼 데일리의 생태경제사상, 김일방, 환경철학 25, 2018, 35~60-
데일리는 경제를 생태계 하위 시스템에 두는 ‘정상상태 경제’를 주장했다. ‘정상상태 경제’에서 주목할 점은 성장과 발전의 분명한 구별이다. 성장은 소비가 물리적으로 증가하지만, 발전이란 주어진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질적 개선이다. 데일리 사상에 영향을 준 학자는 밀(J.S. Mill), 볼딩(K.E. Boulding) 그리고 조제스쿠-뢰겐(N. Georgescu-Roegen)이다. 볼딩은 ‘지구는 우주선’이라 표현한다. 지구는 우주에 떠있는 한 척의 우주선이고, 우리는 모두 우주선 지구호의 승객이라는 관점이다.
밀(J.S. Mill, 1806~1873)의 ‘정상상태(steady-state)’론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공통점은 이윤율의 계속 하락, 투자와 저축 감소, 인구정체로 ‘정상상태’에 도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밀 역시 정상상태를 인정했으나 평가는 달랐다. 스미스, 맬서스, 리카도 등은 정상상태는 경제발전이 중단된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로 되도록 뒤로 미루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밀은 인류의 진보라는 관점에서 정상상태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나는 정상상태가 우리의 현재 상황에 비해 전체적으로 상당히 향상된 상태일 것이라고 믿는다...그것은 더 높은 곳을 향한 열망과 영웅적 덕목들을 파괴하지는 않기 때문에 쇠퇴의 징후라기보다는 성장의 발현이다......인간 본성을 위한 최선의 상태는 아무도 가난하지 않고 그래서 누구든지 더 많이 가져 부유해지고 싶지 않으며, 또 타인들의 앞질러가려는 노력에 의해 내밀리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는 상태이다. -<<정치경제학 원리, 제4권, p92>>, 존 스튜어트 밀, 박동천 옮김, 나남-
데일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조제스쿠-뢰겐(Nicholas Georgescu-Roegen, 1906~1994) 은 수리경제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학자로, 1950년대부터 생태경제학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대표적 저서는<<엔트로피 법칙과 경제프로세스>>(1971)이다. 이 책의 내용 일부는 한국에 잘 알려진 제레미 리프킨의 책 <<엔트로피>>에서 많이 인용되고, 뢰겐은 그 책의 발제문을 썼으며, 리프킨은 그 책을 스승인 뢰겐에게 바친다고 책 머리에 적고 있다. 이 책의 핵심은 엔트로피 개념이다. 경제활동 결과로 불가피하게 에너지와 물질이 쓸모없는 형태로 흩어지고 폐기물이 되면서 지구 전체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뢰겐은 경제활동은 엔트로피 상승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의 제자 데일 리가 주장한 ‘정상상태’도 가능하지 않으며, 되도록 태양에너지에 의존한 마이너스 성장을 주장한다. 이런 태양에너지에 기초한 삶은 쉽지 않지만, 전쟁도구 생산 중단, 패션산업 철폐, 내구성 증가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엔트로피에 대하여, 루드비히 볼츠만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인류가 찾아낸 자연법칙 중에서 가장 상위의 법칙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볼츠만의 묘지에 쓰여있는 엔트로피 공식은 사물의 상태는 항상 질서있는 상태에서 보다 혼돈된 상태로 변동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문명창조를 위해서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고 그만큼 엔트로피도 늘어난다. <<기후를 위한 경제학>>의 저자 김병권은 엔트로피의 논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이론은 그 포괄성 때문에 특정 학문영역을 뛰어넘어 학제간 연구를 추구하도록 자극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과학 비전공자들이 엔트로피 법칙이나 진화론을 인용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데 이때 물리학을 잘못 이해했다거나 최신 진화생물학에 무지하다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경제학자인 뢰겐이 엔트로피를 경제 이론에 끌어들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엔트로피 법칙은 진화론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확고하다. 엔트로피 법칙이라는 물리법칙을 인간의 생명활동과 이를 지탱하는 경제활동에 적용한 뢰겐의 주장 역시(비록 세부적인 곳들에서는 다소 비약이나 편향이 있을 지라도) 큰 틀에서 확고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생태경제학자 팀 잭슨, 피터 빅터는 물론 마우로 보나이우티 같은 많은 탈성장론자들까지 뢰겐의 발상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기후를 위한 경제학>>, 김병권, 착한책가게, p110-
가장 논란이 많았던 부분은, 엔트로피 법칙이 원래는 에너지에만 적용되고 물질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는데, 뢰겐이 에너지와 물질 모두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것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질을 완전히 재활용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재활용의 한계를 지적한 뢰겐의 주장은 옳다. |
경제학은 스토리 텔링이다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1967년 <세포, 진화과정의 공생>이라는 역사적 논문을 발표한다. 약 20억년 전, 큰 세균이 우연히 작은 세균을 삼켰고, 소화를 하지못해 서로 공생을 시작했다는 이론이다. 마굴리스는 ’다윈 진화론이 이기적 유전자의 경쟁의 장’이라는 이야기가 불편했다. 다른 이야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과학적 이론도 결국 은유로, 이야기로 표현된다. 은유는 과학과 공범관계다. 마굴리스는 ’세포공생‘을 가져와 경쟁이 아닌 ’공생’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걸어다니는 공동체다’. 진화는 경쟁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협동도 있고 이타적 희생도 있다. 배신자는 진화에서 배제되고 도태된다.
경제학자 디어드리 맥클로스키는 경제학자들이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고 시를 짓는 사람’이라 말한다. 그럴듯한 은유가 울려 퍼지면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 믿는다. 경제학은 다윈주의의 은유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자연과 사회를 파괴했다. 무한히 성장해야 하고,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시장의 논리는 경제학의 스토리텔링이다. 은유를 현실로 착각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의 불안을 끊임없이 자극해서 소비를 부추긴다. 대량생산, 빠른경제는 환영 받지만, 한나 아렌트가 말한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작업, 느린경제는 무시된다. 우리 미래, 생존은 이 창의적 작업, 돌봄노동, 느린경제에 달려있다. 포스트 성장사회의 기초로서 우리가 반드시 구해내야 할 경제다.
권력의 기술, 틱낫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 존 로크
2020년 코로나 발생 시, 불과 몇주 전만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각국 정부는 휴업 중에도 노동자들의 임금을 보장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배웠다. 급격한 변화는 언제든 가능하다는 것과, 점진주의로는 그런 변혁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생명을 구하는 재난에 대한 대응은 즉각적이었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뒤로 물러났다.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에서 지젝의 말을 빌면 한 쪽에서는 공산주를 지향했고, 다른 쪽에서는 부를 쓸어 담았다. 코로나 사태는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했다. 바이러스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거울을 통해 본 실상은 창백했다. 이번 팬데믹은 기후비상사태에 대응하는 기술을 알려주는 좋은 본보기였다. 환경보호론자 조너선 포릿은 <<지옥속의 희망>>에서 점진적인 변화가 10년 더 지속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전혀 없다고 한다. 200명의 유명한 예술가와 과학자들로 구성된 한 단체는 코로나 이후 노멀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탄원서를 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변화를 원치 않는다. 현 시스템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면 시스템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틱 낫한, 킹 목사, 간디, 소로 모두 잘못된 국가 시스템에 대항했다. 소로의 불복종은 2019년 기후변화 대응행동의 항의와 동일하다. 하버드 대학시절, 소로는 로크를 읽었고 진보를 위해 국가에 저항했다. 2500년 전 노자는 ‘만족을 만족으로 알면, 언제나 넉넉함을 누린다’라고 말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치명적 자만이다. 이 진리를 알아가는 길 위에, 개인으로서, 또 사회로서의 우리를 다시 세우자는 것, 이 책 <포스트 성장 시대는 이렇게 온다, 대전환과 새로운 번영을 위한 사유가> 주는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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