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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호 개인전 - 보정면

입력 : 2023-09-26 04:19:34
수정 : 0000-00-00 00:00:00

권민호 개인전 - 보정면 
 
갤러리 조은 @galleryjoeun
2023.9.21~10.21
개전식 9.21 목요일 17:00

 


2013년 겨울에 돌아왔으니 이제 한국에서 살고 작업한 지 10년이 되어간다. 지난 10년간 대학원 졸업작업을 통해 선보인 작업의 공식을 계속 이어왔다. 트레이싱 페이퍼에 위에 자로 그은 선으로 구축한 흑백 드로잉과 그것에 색과 움직임을 더한 영상작업이 그 공식이었다. 이 공식에 소재를 넣으면 이미지가 나왔고 그것은 꽤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도 그렇게 나온 작업에서 의미를 읽어냈고 감상할 만한 작품으로까지 여기는 듯했다. 내가 내놓은 공식이 정말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틀일까 불안했고 그것으로 찍어낸 결과물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신기했다. 다행히 공식에 대입해 넣을 소재는 계속 보였고 그것으로 뽑아내고 싶은 이야기도 점점 분명해졌다. 마치 내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고 표현하고자 하는 선명한 이미지가 있어서 이런 작업의 틀을 내놓은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업을 선보이는 물리적 공간이 커지고 쥐고 쓸 수 있는 돈의 양도 늘어나면서 공식의 변주가 가능해졌다. 공식의 핵심은 변하지 않았지만 구조가 더 복잡해지고 외형이 화려해졌다. 많진 않지만 내가 내놓는 결과물을 보이고 싶어 돈과 공간을 주는 곳이 계속 나타나는 것이 신기하고 기뻤다.

얼마 전 드로잉 작업을 하는 학교 후배가 갑자기 물었다. “선배 작업의 의미는 뭐에요?” 많이 받는 질문이고 어떤 답을 내놔도 넘어갈 수 있는 큰 질문이었지만 그날따라 말 문이 막혔다. 나는 여느 때처럼 원료를 넣고 기계를 돌려 콜라 캔을 뽑고 있는데 그 행위의 의미를 묻는 것 같았다. 지난 10년간 열심히 돌려왔던 작업 기계를 가리고 싶은 마음도 순간 들었다. 눈치 없는 이 기계는 계속 시꺼먼 연기를 내뿜으며 시끄럽게 돌아가고 원료 통에 새로운 소재를 넣어달라고 입을 벌린다. 장인이 평생 탔던 1톤 포터와 아버지의 손때 묻은 버니어 캘리퍼스가 내 ‘작업 장치’와 중첩됐다. 지난 10년간 내 작업의 의미는 먹고사는 것이었다. 비루하지만 내가 직접 고안한 작업 선반을 돌려 작업을 뽑아내고 돈으로 바꿔왔다. 처음 만들어 설치한 그 기계는 공장의 귀퉁이에 있었고 나는 일이 들어올 때마다 거기에 원료를 넣고 결과물을 뽑아냈다.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이번 전시를 통해 그동안 당연하게 돌려왔던 이 기계를 점검하려고 한다. 소재의 대입과 결과물 도출이라는 목적을 떠나 이 장치에 쌓여있는 먼지와 기름때 소음 등을 확인하고, 안을 열고 내부를 드러내 그 안 구조물을 하나하나 펼쳐 보려는 것이다. 작업 후 지워야 했던 보조선들, 떼어내야 했던 마스킹 테이프, 작업 과정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이미지의 나열이다. 지난 10년간 아무 의심 없이 돌려왔던 기계를 분해해 펼치고 각각의 요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다시 확인한다. 이것은 지난 시간의 정리이자 앞으로 새롭게 뽑아낼 작업을 위한 재정렬 작업이다. 프린터 작업을 새롭게 시작하기 전 뽑아보는 ‘보정 면 (Calibration Page)’과 같다.

포스터 디자인 권준호 @joonhosays
 
 
모갈2호 일러스트레이션 스튜디오 
Illustration Studio Mogul2 
 
PaTI.is 
PaTI Illustration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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