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파주라는 땅에 축적되어 온 가치들이 실현되는 문화재단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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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파주라는 땅에 축적되어 온 가치들이 실현되는 문화재단을 바란다
-블루메미술관 학예실장 김은영
▲ 블루메 미술관
‘자연과 연결되는 미술관’이라는 미션으로 10년
블루메미술관에는 학예사들이 가꾸는 작은 정원이 있다. 조경업체에 관리를 맡기지 않고 미술관에서 전시를 만들고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직원들이 직접 돌보는 자연공간이다. 콘크리트 덩어리 가운데 크지 않은 사이즈로, 그 스스로의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자연주의 정원이기에 학예사들이 일과 정원일을 병행할 수 있다. 이따금 잡초를 뽑아주고 물을 주며 계절마다 식물을 위한 일을 하며 풀리지 않던 전시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관객과 함께 흙을 만지는 프로그램도 진행하는 이 정원은 블루메미술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경험공간이다.
화이트 큐브의 전시장에서 인간이 만든 작품을 마주 대하는 일과 자연의 소리, 빛, 냄새, 바람결이 형성하는 맥락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병행하고, 그 두 가지의 가치를 동등하게 상정하는 것이 블루메미술관의 특성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예술과 자연이 함께 보이던 헤이리 예술마을 안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철새들 소리와 더불어 한때 북한 대남방송 소리가 들려오던 파주의 하늘아래 서있어 왔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파주라는 지역의 환경적 특성이 큰 자원
서울 도심과 가깝지만 도시 한복판에서 만날 수 없는 모습의 자연을 지니고 있는 파주라는 지역의 환경적 특성이 큰 자원임을 깨닫는 때가 많다. 매일 자유로 좌측으로는 북한땅을, 우측으로는 벼농사 현장을 바라보며 출근하는 문화예술계종사자에게 ‘생명’, ‘예술’, ‘평화’라는 단어들은 하나의 줄기로 자연스럽게 묶인다. 동시대에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된 개념들이 파주라는 지역에는 이미 체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파주에서 십년 동안 성장해온 미술관의 새로운 미션에도 파주라는 땅에 축적되어 온 가치들이 배어 있다.
▲Calling Nature Lovers 전시 포스터
<Calling Nature Lovers>전시
‘자연과 연결되는 미술관’이라는 미션을 향후 10년동안 풀어보며 블루메미술관은 아주 작고, 또는 이어본 적 없는 접점들로 자연과 만나는 여러 활동들로 더없이 크고 복잡한 자연이 품은 추상적 가치인 생명과 평화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를 위해 ‘2023 경기도 파주시 박물관 미술관 지원사업’으로 문을 연 전시 <Calling Nature Lovers>는 현대도시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자연을 즐기고 관계맺는 다양한 방식들을 조명한다. ‘미술관 문화가 있는 날’의 일환으로 기획된 <일일초록워크숍>은 마트 기준이 아닌 땅의 논리대로 자라난 생긴대로 농작물의 생산과 소비문화에 관한 강연 및 체험프로그램들로 미술관이 농부들과 함께 참여자와 소통하는 프로그램이다. 기후위기 시대 매일의 삶과 이분화될 수 없는 자연과의 존재방식을 다시 생각하며 거대한 자연과 연결되기 위한 기초과정과도 같은, 자연을 향한 영감과 감수성의 시작점을 나누고자 하는 콘텐츠들이다.
지역의 땅과 가치가 중심이 되는 문화재단이 설립되길
이러한 내용들로 미술관의 한 해를 채워가고 있던 중 파주문화예술재단 건립을 위해 예술인들이 모인 자리에 함께하게 되었다. 이 생명평화예술포럼에서 논의된 내용들에서 미술관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더 자신감 있게 박차를 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의 땅에 기반한, 그것에서 비롯된 가치가 중심이 되는 문화재단이 설립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꼭 해야할 말을 나누는 문화예술 콘텐츠가 샘솟는 지역이 되기 위해서는 단단한 밑받침을 이루며 구심점이 되는 가치가 존재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생산자들이 콘텐츠를 더 뾰족하게 다듬을 것이고 소비자들과 더 구체적인 지점에서 만나며 필요한 생각들이 모일 것이기 때문이다.
▲ 블루메 미술관내 트리가든
파주는 텅 빈 ‘부지’가 아니라 이야기가 풍부한 ‘땅’
파주를 대표하는 공연장, 미술관 같은 물리적 공간이 있는가 없는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갈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 파주는 텅 빈 ‘부지’가 아니라 이미 이야기가 풍부한 ‘땅’이다. 파주의 땅은 예술, 평화, 생명이 동일선상에서 하나의 구슬로 꿰어지는 이야기와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동시대 전지구적 가치이기도 한 키워드들을 더 조밀하고 진중하며 삶속에서 빛을 발하는 메시지로 소통되도록 화두로 불을 밝히는 재단이 파주에 건립되기를 바란다. 그 화두를 따라 더 발전적인, 더 소통가능한 메시지를 만들어낸 문화예술인들이 모일 것이고 그 메시지를 읽고 소화한 더 많은 이들이 더 좋은, 큰 물결의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 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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