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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현 박사의 통일 문화 산책 ⑪ 예멘의 통일과정

입력 : 2015-06-01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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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의 통일과정과 문화적 동질성



 



 



사우디 아라비아 남쪽에 있는 예멘은 인구는 2,600만명이지만 면적은 한반도의 2.5배에 달하는 나라이다. 1517년 오스만 투르크(터키)의 침공과 1839년 영국의 아덴점령을 거쳐 1914년 양국 간 분할협정으로 남북으로 분단되었다가 1990년 4월 통일되었다. 그 후 1994년 다시 내전을 거쳐 재통일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테러와 납치가 난무하고 알카에다, IS 등 극단적 세력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예멘의 통일과정



자본주의 체제이지만 이슬람 전통이 강한 북예멘과 사회주의 국가인 남예멘은 두 차례의 전쟁을 치르면서도 통일협상을 꾸준히 진행하였다. 아랍연맹의 중재로 72년, 79년, 81년, 88년 총 네 차례의 통일협상을 벌여 의견을 좁혀왔다. 통일의 전기를 마련한 것은 소련의 고르바쵸프가 남예멘에 대한 경제, 군사 원조를 중단하면서 남예멘 지도부가 일대 개혁을 단행하면서부터이다. 남· 북예멘은 88년 정상회담으로 사나협정을 맺었다. 통일헌법의 내용과 일정, 국경 2,200 km의 비무장지대화, 국경 지역 유전의



 



공동개발, 신분증 제시만으로 자유로운 국경통과 등을 합의했다. 양국이 사나협정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통일 분위기는 무르익었지만, 통일정부의 형태와 지분을 둘러싼 이견이 마지막 걸림돌이 되었다. 북예멘 측은 느슨한 국가연합 형식의 통합을 주장하고, 남예멘 측은 중간 단계 없이 즉각 통일정부를 구성하자는 것이었다. 남예멘은 인구가 1/4 밖에 되지 않으면서 정부의 모든 부문에서 반분하자는 요구를 내걸어서 둘 사이 절충이 어려웠다.



 



통일의 결정적 전기는 89년 11월 북예멘의 살레 대통령이 남예멘의 수도 아덴을 방문했을 때 만들어졌다. 아덴 시민들이 열광적으로 살레를 환호하고 즉각 통일을 요구했다. 시민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감동한 살레 대통령이 남예멘 측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해서 통일협상은 마무리되고 90년 5월 남· 북예멘은 통일되었다.



 



통일 이후 경제난과 내전 발발



1991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걸프전쟁 때 예멘은 아랍연맹과 함께 미국 등 외세 개입을 반대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는 보복을 했다. 사우디, 미국이 경제 원조를 중단하고, 사우디에서 일하는 예멘 노동자들을 강제 귀환시켜 예멘의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한편 통일 당시의 합의대로 93년 총선거가 실시됐는데, 사우디 아라비아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개혁당이 예멘사회당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그 과정에서 테러가 난무하면서 분열이 증폭되었다. 예멘사회당은 불법무기 단속, 부족들의 사병제 해체 등을 강하게 요구했는데 살레 대통령이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결국 93년 말에는 사실상 두 개의 정부로 환원되었다. 급기야 94년 4월 아믈란에서 군사충돌이 발생하면서 남북 간 전면적 내전으로 확산되었다. 다행히 그 해 7월 북예멘측이 아덴을 점령하면서 재통일을 이룩하였지만, 이후 남예멘 주민들 사이에는 불만과 원한이 쌓이게 되었다.



 



문화적 동질성 문제



통일 이전 북예멘과 남예멘 사이에는 커다란 사회적·문화적 격차가 존재하였다. 북예멘 지역은 부족 단위로 사회가 운영되고 이슬람 전통이 강한데 비해, 남예멘 지역은 영국의 식민지여서 서구적 분위기가 강했으며 여성들의 사회참여도 활발하였다. 그런데 내전에서 승리한 북예멘이 자국의 전통과 제도를 힘으로 강요하고 남예멘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갈등이 축적되었던 것이다. 2011년 살레 대통령의 철권 통치가 끝나자 예멘은 곧장 내전과 무정부 상태로 바뀌면서, 북부는 후티 반군이, 중부와 남부는 IS와 알카에다 세력의 온상지가 되어 테러와 납치가 일상화된 나라가 되었다.



 



예멘의 경험은 문화적 동질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민족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문화적으로 동질적일 경우 경제적 어려움이 닥쳐도 단합하여 이를 극복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경제난은 문화적 이질성과 맞물리면서 곧장 정치적 갈등과 폭력으로 비화되는 것이다.남북한이 통일 이후 안정과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교류를 통해 민족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협력을 통해 현재 남북 간 경제적 문화적 격차를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백장현 (인천대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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