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을 건너온 역사(27) 9. 율곡과 우계, 평생의 벗 (1) 시대와 산천 그리고 서로를 닮아간 이
수정 : 2021-06-02 08:47:31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27)
9. 율곡과 우계, 평생의 벗
(1) 시대와 산천 그리고 서로를 닮아간 이
사람은 시대를 닮는다고 한다. 율곡리에 앉아서 성학을 정리하고 화석정에 올라 기름칠을 했다는 율곡의 모습에선 절정에서 내리막으로 향하던 시대가 엿보인다. 전란 속에서 힘들여 지조를 지켰던 우계는 그 뒤 조선의 고단한 미래와 닮아 있다. 사람은 또한 그가 살아가는 산천을 닮는다고 한다. 율곡과 우계는 같은 산천 아래 살았다.
▲ 율곡이 벗들과 함께한 화석정
“분수에 따라 생애가 만족한데/ 옮겨 삶은 마을이 인후하기 때문이라/ 봉우리는 감악산에서 뻗어 왔고/ 물은 임진강에서 흘러오네.(이이. 「우연히 읊다」 일부)”
율곡과 우계는 열아홉, 스물에 만나 벗이 됐다. 평생의 벗을 말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들 앞에는 여러 갈래 길이 놓여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절차탁마하는 것이 어찌 이에 그치고 말 수 있겠습니까.”
율곡은 우계에게 편지를 써 함께 북돋아 수양할 것을 말했지만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어찌 한 곳에 매달린 조롱박처럼 되어/ 쓸쓸하게 한 처소에 매여 있으랴/ 팔방과 구주 사이에/ 어디가 막혀서 자유로이 놀지 못하랴/ 저 봄빛 띤 산 천 리 밖으로/ 지팡이 짚고 내 장차 떠나가리/ 나를 따를 자 그 누구일고/ 저녁나절 부질없이 서서 기다리네.(이이. 「동문을 나서며」 일부)”
세속의 얽매임에서 탈출하겠다는 선언. 율곡은 그 길로 금강산으로 들어간다. 어머니 신사임당의 상을 마친 뒤였고, 우계와 벗 삼은 직후였다. 율곡은 1년간 불교에 들어가 다른 세상을 산다. 하지만 세속의 끈을 놓지는 못했다.
“취미를 얻어서 저절로 근심을 잊는데/ 시를 읊자니 글귀가 이뤄지지 않네/ 꿈길에 잠깐 고향 산천 돌다 보니/ 가을 강, 비에 낙엽만 지네(이이. 「우연히 시를 짓다」)”
금강산에서 율곡은 고향 산천을 떠올린다. 결국 돌아와 자경문을 짓고 성인의 삶을 다짐한다. 율곡이 살아간 산천은 고향마을에 한정되지 않는다. 강릉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했으며, 나중엔 가족과 함께 해주 석담으로 이주한다.
▲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
율곡이 산천을 닮았다면 그의 얼굴엔 강릉 바다와 석담 구곡, 그리고 임진강이 고루 담겼을 것이다. 어머니의 강릉과 식구들의 석담, 그렇다면 임진강엔 어떤 모습이 담겨 있을까?
율곡은 한때 벗들과 함께 집을 마련해 살 계획을 가졌다. 친구 하나가 터를 내 놓았는데 마침 파산에서 가까웠다. 그곳이 여의치 않자 임진강을 오르내리며 곳곳을 훑어보고 다녔다. 우계는 그럴 시간에 책을 더 보라고 핀잔을 주었다. 율곡은 개의치 않았다. 벗을 향하는 마음이 그만큼 컸다.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을 이끌고 석담으로 이사한다.
“궂은 비 열흘을 내려 대좌 못하고서 작별하게 되니 마음 더 서글퍼라(해주로 떠나려 하면서 호원에게), 이내 속마음 그 누가 알랴. 같은 병든 이에게 부치노니 그대 말고 내 누구를 따르겠소.(호원에게 부치다), 반평생에 이별의 슬픔 많았으니 다시금 천산에 험한 길을 생각하게 되네. 이야기 끝에 뒤척이다가 새벽닭이 울어, 눈 들어 보니 온 창문엔 서리 달만 차갑구나.(소를 타고 호원에게)”
▲ 가족들과 정착한 해주 석담
율곡의 편지엔 우계를 만나지 못하게 된 안타까움, 벗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포의지교를 맺고서 ‘절차탁마하는 것이 이에 그칠 수 있겠습니까.’라던 약속이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 길은 달랐지만 둘은 서로를 배워갔다. 시대와 산천을 삶으로 담은 그들은 서로를 닮아갔다.
“풀이 산 계곡에 우거지고 비가 다리를 무너뜨려/ 어느 곳이 소요산 가는 방향인 줄 모르겠네/ 서로 만남이 일찍이 서로 아는 이 같아/ 연기 덩굴로 끌어들여 달밤을 함께 하네(이이. 「우계와 함께 소요산을 찾다」)”
이재석
DMZ생태평화학교 교장
[임진강 기행] [걸어서 만나는 임진강] 저자
#1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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