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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고딩의 같잖은 문화리뷰 <21> 사라지는 여자들: 이주·노동·여성 디아스포라

입력 : 2017-07-02 2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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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수업 선생님의 추천으로 인디다큐 페스티발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봤다, <호스트 네이션>.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온 노동자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에 오는 루트에 집중했다. 생소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인 브로커와 필리핀 브로커가 여성들을 데려와 노래 연습을 시키고, 연습이 됐다 싶으면 영상을 찍어 무려 ‘영상물 등급 위원회’에 보낸다. 인정이 되면, 비자가 나온다. 여성들은 한국으로 온다. 그리고 지하로, 술집으로, 간다.

 

브로커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침체된 현실의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라 믿는다. 영화 초반에는 그들의 인터뷰가 많았다. 연습하는 여성들의 희망적인 모습이 나온다. 나도 모르게 ‘괜찮은 거 아닐까?’했다. 이 주제에 아는 것이 없으니 쉽게 설득 당했다. 결국 영화 중후반부, 한국에서 그녀들의 일과 상황이 나오자 그 생각을 후회해야 했다. 성매매가 아닌, 합법적인 일이라는 게 사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돈으로 사람을 앉혀놓고 술을 따르게 만들자 자연스레 위치가 나뉘었다. 인권은 너무나도 쉽게 유린당했다.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 자체가 범죄였다. ‘괜찮은 거 아닐까?’는 무슨. 죄책감이 들었다.

 

오늘 <호스트 네이션>의 이고운 감독님이 참여하는 포럼을 지켜보자 이번엔 다른 부분에 주목할 수 있었다. 이주노동여성을 둘러싼 환경이 아닌, 그 여성 자체를 보게 된 것이다.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이주하려는 여성들은 보통 편모가정에서 자라거나 가정폭력으로 남편과 이별한, 대부분이 빈곤한 형편에 있는 여성들이었다. 그런 그녀들이 가장 역할을 하러 타지에 나가기로 결심한 것은 그녀들이 매우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성격이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각박한 환경 속, 주어지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강인한 여성만이 한국으로 온다.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사회보다 거대한 것이 성애화된 노동을 강요하는 시스템이다. 돈을 벌려 한국에 오기 위해 돈을 빌렸다. 그 돈을 갚기 위해 예상치 못한 일을 해야 한다. 한국까지 왔으니 돈을 벌고 가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다. 그래서 그 똑똑하고 강인한 여성들이 술집에서 일을 한다. 떳떳하다 말할 수 없는 노동과 위치다. 더욱이 벗어날 수 없다. 그 시스템 속에서 여성들은 스스로와 타협하기 시작한다. 자존심을 꺾고, 조금만, 조금만 하며 자신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희망을 갖고 온 사람을 무너뜨리는 시스템이다.

 

포럼에는 <호스트 네이션>의 이고운 감독님 외에도, <마담 B>의 윤재호 감독님, <이태원>의 강유가람 감독님도 참여하고 계셨는데, <마담 B>와 <이태원> 모두 <호스트 네이션>의 여성들과 같이 강인하고 능동적인 여성을 주인공 삼고 있었다. 감독님들은 모두 ‘자신의 편안한 공간을 벗어날 수 있는 주체적인 여성이 극복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부당함’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 시스템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었지만, 위력은 깨닫지 못하던 나는 그 안에서 피해를 입는 여성들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를 알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표면적인 ‘이동 스토리’가 아닌 삶과 사람이 스며든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듣자 자꾸만 마음이 흔들렸다. 슬프고 힘들고 화가 나는 것, 나도 모르게 이입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디아스포라 영화제의 메인 주제는 ‘환대의 시작’이다. 이주민들을 환대한다는 의미일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어렵고 쉬운 이야기였다. ‘타자’가 아닌 ‘우리’로 대하기. 그러기 위해서 시작해야할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조은현 16세 「파주에서」틴 청소년 기자

본문사진: 영화 호스트네이션의 장면들

 

시놉시스

다큐멘터리 <호스트 네이션>은 2년에 걸쳐 26세의 필리핀 여성, 마리아가 한국 클럽의 외국인 가수로 일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한국의 독특한 성매매 산업인 미군 클럽으로 외국인 여성들이 수입되는 경로를 폭로한다. 그리고 한국과 필리핀에 걸쳐있는 이 산업의 독특한 취업 과정과 수입 경로 속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수혜자들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마리아는 필리핀 최남단의 다바오시 빈민촌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외국에 취업해 빈민촌을 탈출하는 꿈이 있었다. 한 연예인 스카우터가 마닐라의 매니저 욜란다에게 마리아를 소개했을 때, 마리아는 자신의 오랜 소망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매니저 욜란다는 해외 클럽에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을 훈련시키고 해외조직에 연결하면서 알선비를 벌고 있다. 욜란다는 지난 20년 동안 이웃 아시아 국가들의 성산업의 흥망성쇠를 직접 목격하며 일본 클럽들의 전성기를 뒤로하고, 현재 한국을 가난한 필리핀 여성 취업에 최고의 기회로 보고 있다.

 

감독 이고운 | LEE Ko-woon

이고운은 1997년부터 방송 다큐멘터리 연출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기획, 연출하였다. 현재 다큐멘터리 및 실험영화 교육과 제작을 하고 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한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경험하며 한국이 아시아의 최대 가해 국가가 된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아시아 여성의 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한국인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작업들을 하고 있다.


#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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