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고딩의 같잖은 문화리뷰 <33> 난민인권단체방문기① 여는글- 말랑한 머리 단단한 손
수정 : 2019-09-05 02:17:47
흔한 고딩의 같잖은 문화리뷰 <33>
난민인권단체방문기- 여는글
말랑한 머리 단단한 손
여름이면 바다를 봤고 겨울에는 귤 한 박스 왔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비롯한 외가친척들이 제주도 사는 덕이었다. 또래가 많은 외가는 친근했다. 그들이 사는 제주도 역시 그랬다. 오래된 벽장 냄새가 나는 할머니 댁에서 바람 시원한 여름이고 햇살 따뜻한 겨울이고 가릴 것 없이 지냈다. 2층에서 쿵쿵거리며 뛰어다니다가 아닌 밤중에 혼쭐난 기억조차 제주도였다. 내가 사는 곳은 경기도 파주, 북한이 맨눈으로 보이는 최북단에서 저기 남쪽 바다 섬 하나에 애틋함 많이도 느꼈다.
중국인뿐이네, 관광개발로 환경 다 망가졌네, 해도 한 결 같이 따뜻하던 그 곳에 중국인보다 낯설고 용두암보다 더 유명해진 사람들이 들어왔다. 예멘 난민들이었다. 동갑내기 친구이자 친한 사촌인 수진이는 올해 초 그 때 분위기를 ‘험악했지.’ 한 마디로 일축했다.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몇 달 뒤 제주를 휩쓴 태풍에는 서울을 빗겨갔다며 없었던 일 취급하던 방송들이 난민 관련 이슈들을 세계 각지에서 끌고 왔다. 세종로에서는 난민 수용 반대 집회와 찬성 집회가 동시에 열렸고 토론 방송도 온통 그들의 이야기였다.
뉴스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2016년 독일 쾰른에서 있었던 집단적 성범죄 피해를 남성 무슬림 난민의 위험성으로 보도하고, IS 테러 피해 역시 상기시켰다. 2015년 파리 연쇄 테러가 다시 이야기됐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에게도 파리 테러 사건은 생생했다. 큰 언니가 파리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 단체 메신저는 난리가 났고, 부모님은 언니 안부를 묻는 데에 정신이 없었다. 뉴스를 보며 저 일이 언니 방 창문 너머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서도 난민이라 함은 나에게 위협과 공포로 인식됐다.
난민 수용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여성들이 이슬람 문화의 성차별을 이야기할 때는 흔들리기도 했다. 내가 모르는 난민들의 공포보다는 더 가까운 감정들이었기 때문이다. 난민 공부를 시작하고 난민들이 받는 위협과 차별에 대해 알아갈 때도 여전히 여성들의 이야기는 잊을 수 없었다.
그에 대해 여성들이 한국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느낀 공포가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가장 와 닿았다. 여성대상범죄를 자주 접하게 되며 생긴 두려움이 모르는 남성들에게 적용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고, 탓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난민이 약자임을 나는 배우고 있었다. 아닌 척 해도 가지고 있던 이질감과 적대감, 그리고 두려움을 고민하고 의식하는 과정, 그게 내 공부였다.
난민, 그간 로드스꼴라에서 다룬 주제보다 조심스럽다. 잘 쓸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어느 때도 아닌 지금 당장의 이슈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나 인식이 두렵지도 않았다. 이들이 난민이 된 배경에는 내가 분명 소화시키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을 뿐더러 단순히 난민이라는 단어로 묶기에는 이들의 삶이 너무나 다양했다. 내 짧고 작은 경험으로는 그 이야기들을 온전하게 담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은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들 나와 같이 어느 정도 친절하고 어느 정도 적대적이며 그보다 먼저, 소극적이다. 그렇다면 나와 같은 과정을 겪게 되지 않을까. 난민을 이해하는 게 힘들다면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나를 먼저 이해해줄 수는 없을까. 하나하나 작게 만들어지는 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먼저 나를 깨워주고 바꾸어주었기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난민을 이해한다는 것, 한국을 주도적인 난민 수용 국가로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군가를 모른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무시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 다짐이 나 사는 곳에 어떤 영향 끼칠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바뀜으로 내 미래가 바뀌었다. 조금 더 밝고 조금 더 다양한, 그런 미래가 있다.
파주에서 teen청소년 기자
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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