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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콩달콩이야기 <3>  고디바에서 응원봉까지

입력 : 2025-04-18 11:44:30
수정 : 0000-00-00 00:00:00

 알콩달콩이야기 <3> 

고디바에서 응원봉까지

평화마을짓자 이사장 정진화

 

천년 전 영국의 코벤트리에 고디바 백작부인이 살고 있었다. 봉건영주인 남편 레오프릭 백작은 농민들에게 높은 세금을 내라고 하여 농민들의 시름이 깊었고 굶어죽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현실을 알게 된 고디바 부인은 남편에게 여러 차례 세금을 내려서 백성들의 고통을 줄여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번번이 묵살하였는데, 또 다시 간청하는 고디바에게 정 그렇다면 벌거벗고 마을을 한바퀴 돌면 세금을 내려주겠다고 했다.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고디바는 그 말을 듣고 알몸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겠다고 결심한다.

 

존 콜리어의 [레이디 고디바] 1897년 작

 

마을 사람들에게 그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감격하여 고디바가 말을 타고 벌거벗은 채 동네를 도는 날, 문을 닫고 창문의 커튼을 내려서 내다보지 않았다. 설마 그러랴, 했던 레오프릭 백작은 결국 자신의 말대로 한 고디바 부인의 간청을 들어주었고 백성들은 환호했다.

 

전설같이 전해져오는 이 이야기는 이후 고디바 페스티벌로 오늘날까지 마을축제가 되어 이어지고, 존 콜리어와 달리의 그림과 퀸의 노래에서 살아나는 등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 이야기에 감동한 벨기에의 초콜릿 회사는 고디바 초콜릿을 만들어 세계적인 회사가 되었다.

 

다만 몰래 창문으로 내다보았던 단 한 사람, 재단사 톰이 있었는데 그는 천벌을 받았는지 눈이 멀어버렸다. 여기서 관음증을 나타내는 엿보는 톰(peeping Tom)’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농민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안타깝게 여겨 수치스러운 행위를 감당한 고디바 부인의 고귀한 용기와 마을 사람들의 지지와 연대는 새로운 저항의 힘을 보여주었다. 남편 레오프릭 백작도 고디바 부인에 힘입어 이후 선정을 베풀게 되었다고 하니 이 역시 아름다운 결말이다. 천년이 지난 오늘날 계엄령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이 시국에 불현듯 고디바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내가 어릴 때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를 많이 하고 놀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남자아이 둘이 연필 깎는 칼을 들고 나타나 우리들의 고무줄을 끊으려고 하였다. 당황한 우리들은 소리를 지르며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남자애들은 히죽히죽 웃으며 고무줄을 끊으려고 돌아다녔다.

 

그러자 열 댓 명 되는 여자애들이 손에 손을 잡고서 남자애들을 에워싸서 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포위했다. 힘센 남자애들이 우격다짐으로 여자애들의 손을 벌려 나가려 했지만 그럴수록 우리들은 더욱 촘촘이 다가서서 원을 뚫고 나가지 못하게 했다. 남자애들은 마침내 항복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서야 원 밖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다시는 고무줄을 끊는 일이 없어졌음은 물론이다.

 

 

고디바 부인의 용기와 고무줄놀이 훼방꾼을 물리친 여자아이들의 연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평화행동의 놀라운 힘으로 나타났다. 21세기 한국에서 123일간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계엄사태는 권력자에 대한 파면으로 극적인 일단락을 지었다. 돌멩이 하나 들지 않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남녀노소 시민들은 2016년의 촛불 대신 응원봉의 찬란한 빛으로 거리를 온통 축제의 한마당으로 만들었다. 줄지어 단상에 오르는 당당하기 이를 데 없는 이름 없는 연사들은 숱한 명대사를 남기고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민들은 국회에 진입하는 무장한 계엄군에게 맨몸으로 맞서고 눈 내리는 한남동에서 은박지 옷으로 밤을 꼬박 새우며, 남태령을 넘는 농민들에게 달려가 그 밤을 함께 지켰다. 새로운 응원 방식으로 등장한 선결제와 필요한 음식과 물품의 끝없는 나눔 행렬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민주공화국의 주인이 국민임을 증명하며 온 세계에 민주주의의 새로운 단계로 의 진입을 보여주었다.

 지극히 평화적이지만 대단히 위력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힌 위대한 시민들의 아름다운 결말은 아직 진행형이다. 44일 헌법재판소 판결을 듣는 시민들의 가슴에서 솟구친 눈물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으로 번져갔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대동세상의 길이 무엇일지 함께 찾아가는 이 과정은 희망이다.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에서 정의와 평화가 물결치는 미래를 향해 우리 손에 손 잡고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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