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얼굴 <144> 설치작가 차주만 - 베를린 장벽 거리에 설치작업 '믿음만 있으면 건널 수 있다'
수정 : 2024-12-24 00:29:53
아름다운 얼굴 <144> 설치작가 차주만
베를린 장벽 거리에 설치작업 '믿음만 있으면 건널 수 있다'
차주만 작가는 작년 ‘한국전쟁 정전 70주년-베를린 평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전시를 했다.
베를린 장벽앞에서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알리고,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을 35일간 전시한 작가 차주만. 그의 작품은 오두산통일전망대 옥상에도 있다. 길게 설치된 파이프를 통해 소통이 절실한 남북의 모습을 표현한 ‘대화’라는 작품이다.
파주 법원읍 삼방리에 작업실을 둔 차주만 작가는 ‘평통예모(평화와 통일을 여는 예술인 모임)’의 대표이다. 그가 베를린에서 전시했던 ‘믿음만 있으면 건널 수 있다’는 작품을 우리 파주에서도 만나고 싶다.
▲ 베를린에서 전시했던 작품 '믿음만 있으면 건널 수 있다'
▲ '믿음만 있으면 건널 수 있다'는 작품에 대해 독일 미디어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독일의 베를린장벽 거리에서 35일간 작품 전시
차주만 작가는 작년(2023년) 7월부터 ‘믿음만 있으면 건널 수 있다’는 작품을 베를린 장벽이 있던 바우어거리 피터리빙의 ‘자유의 도약’ 전시관 앞과 바벨스베르크 궁전 정원과 포츠담미술관 실내외에서 전시를 했다.
이 전시는 2021년 12월부터 독일측과 공동기획으로 1년 7개월간 준비를 하여 만들어졌다. 베를린 장벽재단, 베를린-브란덴브르크 정원 및 성 관리재단, 포츠담미술관 등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아서 진행하게 된 전시였다. 전시 기간은 2023년 7월 23일부터 8월 27일까지 35일간이었다.
“독일에 설치한 작품은 ‘믿음만 있으면 건널 수 있다’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전부 고무와 프라스틱으로 만들어져있습니다. 그래서 실재보다 더 실재처럼 보이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벌리고 넘나들 수 있습니다. 철책이면서도 철책이 아니고 철책이 아니면서도 철책인 이 작품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메세지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 베를린에서 전시했던 차주만 작가의 작품 '믿음만 있으면 건널 수 있다'앞에서 '베를린 피이스 프로젝트' 참가자들
베를린 장벽은 허물어졌는데 한반도는 왜?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한반도 철책장벽을 허물어진 베를린 장벽에 세우면 참 의미가 있겠구나 하는 상상으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은 허물어졌는데 왜 한반도는 계속해서 분단국가로 살아가고 있는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한반도의 분단 현실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 국제적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민 끝에 탄생한 작품이 ‘믿음만 있으면 건널 수 있다’라는 작품이다. 관객들은 실재 철조망으로 착각하다가 호기심으로 한참 동안 만져보고 관찰하다가 고무철조망임을 알고 난 후 벌려도 보고 철조망을 넘어가기도 한다. 작가가 의도한 것을 관객들이 실천하는 셈이다.
이 작품에 대해 독일내 tv 뉴스를 비롯해 15곳의 매체에 소개되면서 독일언론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고 작가는 소개한다.
▲ 차주만 작가
이산가족 상봉 모습에 충격 받아
차주만 작가는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가치관이 변해왔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미술의 역사적 흐름안에서 여러 사조들을 공부하고 탐구하는 시기가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에 대한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자유, 평화 이런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어요. 함축시켜서 몇 가지 단어로 좁혀졌을 때 자유 평화지, 그 기저는 이 사회에 대한 관심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2010년도부터 남북문제, 한반도 문제. 평화 문제 등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고 한다. 2010년도에 처음으로 민통선예술제에 참여했고, 그 이후 미술감독을 몇 년 동안 해왔기 때문이다.
“2004년도부터인가 제가 해외에 전시를 하러 자주 나갔었어요. 그때 어떤 이산가족들이 TV화면을 통해서 상봉하는 모습 보고 되게 많은 충격을 받았죠. 그렇게 반갑게 만나고 또 헤어질 때, 그 기약 없는 그 모습. 그들의 표정과 행동들이 말 그대로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잖아요. 가공되지 않고, 어떠한 액션을 가식적으로 취하지 않고... 그런데 왜 이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가? 그러면서 인간이 갖고 있는 비이성적인 것들, 그래서 정말 인간은 동물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표현이 좀 그렇지만 되게 야만적이다. 정말 말 그대로 피도 눈물도 없는 정치인들. 정치적 이해관계로 이런 천륜을 끊고 단절시키고, 이것이 지금 이 시대에 있다라는 것. 그런 일종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오두산 전망대 옥상에 상시전시된 차주만 작가의 '대화'
해외 전시 다니며 우리의 정체성 고민하게 되고
그리고 해외 전시를 나가면서 우리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할 계기가 많아졌다고 한다. 자신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발언이 그들에게는 한국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기에 함부로 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 친구들이 한국 왜 이렇게 잘 사냐. 그랬을 때 내가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정말 되게 곤란한 질문이기도 한데, 우리가 잘나서 그렇다 똑똑해서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고민을 하게 되면서 한국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이런 여러번의 경험을 통해서 내가 사는 땅, 우리 정체성, 개인 정체성 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적 정체성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보게 되고, 우리의 문제를 도외시하면서 내가 뭘 한다는 것은 약간 어불성설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 문제를 외면하고 타인의 문제, 다른 나라, 범세계적인 얘기를 한다는 것도 웃기고, 그러다 보니까 우리 남북문제가 보이고, 동시에 이산가족의 현장들을 목격하면서 이 얘기를 좀 해야겠다고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 같습니다.”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에 놓여 있는 ‘대화’라는 작품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된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평통예모’ 만들어 “다름도 하나로”
그는 2011년, ‘평화와 통일을 여는 예술가모임(이하 약칭 평통예모)’를 만들었다. 자신이 사람들과 관계를 잘 하는 면이 있고, 기획력이 있어서 만들게 된 것 같다고 겸손히 말한다.
“발언을 할 때, 합창을 해야 훨씬 더 아름답고 보기 좋잖아요. 사람들 귀담아 듣게하려면 혼자 떠들고 노래하는 것보다... 결국은 발언의 확장을 확보하는 거죠.”
이 평통예모의 구성원들은 작품 칼라만이 아니라, 정치적 칼라도 모두 다르다고 한다.
“물론 중도도 있고 좌도 있고 우도 있고, 극좌 극우도 있어요. 스펙트럼이 되게 넓어요. 저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모이면 관점에 허점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긴 한데, 또 그 이면의 것을 못보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좀 달랐을 때 내가 못 보는 것을 상대를 통해서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상징적인 건데, 우리가 지금 북한하고 어마무시하게 다르잖아요. 근데 그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어떻게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고민해본다면, 지금 우리 안의 다름은 아무것도 아닌 거죠. 조족지혈이죠. 그래서 상징적으로라도 이 남한 사람들 사이의 다름도 하나로 묶어보자, 그런 상징성을 갖고 있어요.”
이토록 넓은 스펙트럼의 칼라를 하나의 조직 안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적인 작업의 10의 1만 신경쓰자”
“정치는 우리 삶의 질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어떤 기축적인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 발언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작가. “단톡방이 있는데, 거기에서 의견들이 나와요. 다른 시선으로 발언들을 하지요. 그런 것들을 서로 엿보는 거죠. 심할 때는 약간 중재도 조금씩 하죠. 근데 저는 그 장이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왜냐하면 다름을 실질적으로 보잖아요.”
지금 세태는 유튜브를 보며 자신의 생각에 몰두하고 상대진영은 아예 안보면서 더욱 편협해지고 있다. 더구나 각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고집하게 된다. 이런 기형적인 사고는 자기들끼리만 계속 모였기 때문에 균형감을 잃고 보편성을 잃게 된 것이라 진단한다.
“너네들은 싫으니까 안 보는 게 능사는 아닌 거예요. 만약에 갈라지잖아요. 또 그 안에서 갈라지고...끝이 없는 거라고 저는 봐요. 그러니까 보기 싫어도 봐야 되고, 또 끌어안고 가야 된다고 봐요.”
이런 취지로 차주만 작가는 같이 하자라고 한다.
“온전히 100% 다 같이 하자는 거 아니다. 10의 1만 하자. 당신의 예술적인 물리적인 작업들을 10의 1만 여기다 신경 써라. 왜? 당신이 이 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땅의 정치와 그 수혜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최소한 10% 정도는 신경 쓰여야 되지 않겠느냐. 정치 문제나 남북 평화 통일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얘기하면 대부분 다 수용을 했어요”
▲ 진도 앞바다 (2015년 개인전)
작품 세계 “네 믿음이 너를 자유케한다”
2015년에 세월호를 소재로 한 ‘진도 앞바다’ 개인전, 2018년 DMZ박물관 앞 야외 설치물 ‘바람’도 인상적이다.
‘진도 앞바다’는 우리사회와 어른들의 잘못으로 305명의 사람이 죽었고 그 참상의 아픔을 기억하고 반성하기 위해 설치미술로 표현한 전시였다. 물을 담은 병은 생명을 뜻하는데, 전체 사용된 병의 갯수는 476개인데 이중 304개 병은 전시장에 설치하면서 현장에서 하나하나 깨나갔다고 했다.
▲ DMZ박물관에 설치된 차주만 작가의 '바람'(2018년)
DMZ박물관 앞 야외 설치물 ‘바람’은 4.5미터 높이의 철봉 100개를 설치하고 물리적인 바람이면서 우리의 염원, 바램이란 양자의 의미를 담아 설치했다고 한다.
현재 그는 ‘네 믿음이 너를 자유케한다’는 작품명으로 시리즈 작업을 하는 중이다. 설치미술 형식으로도 작업하고, 평면 작품 작업도 한다고 한다.
“캠퍼스에다가 그물망을 그려요. 저는 그물망 내지 철망을 그리기도 하고...그 일부분을 뻥 뚫어 놓고 어떤 자유 해방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작품의 이름이 ‘네 믿음이 너를 자유케 한다’입니다. 뭔가 어떤 보이지 않는 벽을 뚫고 나아가고자 하는 심리와, 나아갔을 때 느끼는 자유 같은 것들을 동시에 집어넣으려 합니다.”
▲ 네 믿음이 자유케하리라-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찍은 사진
좀 불편해지자는 생각으로 파주에 작업실
그는 양평에 작업실을 지으려했다. 그러다가 무엇보다 이산가족 상봉의 충격으로 관심사도 바뀌면서 “산 좋고 물 좋고 건물도 예쁘고 낭만적인 자연환경 조건에서 작업이 될까?”라는 자문을 하게 되고, “일단 나부터 좀 불편해지자”라는 마음으로 파주 법원읍을 찾게 되었다. 파주에 연고가 전혀 없는데 찾아와보니 자신이 신병교육 훈련을 받은 1사단이 있어 짜증이 났었다고 한다.
“옛날 생각들이 부유 하듯이 다 떠올라가지고... 묻어 지지가 않아요. 워낙 크게 데미지를 입으면...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잖아요. 몸의 상처는 차라리 쉬운데 이 머릿속에 있는 상처는 쉽지 않잖아요?”
하여튼 차주만 작가는 ‘너무 배부르고, 따시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뭔가 불편하고 조금 부족해야할 것 같아 파주를 찾았고, 이 곳 파주에서 군생활의 마음 상처를 쓰다듬으며 작업중이다.
평화, 통일 문제는 접경지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 전세계적 주제라 생각한다. 2022년에 군산에서 DMZ를 주제로 한 전시를 했고, 반응이 좋았다. 이런 주제로 부산, 광주, 목포, 대구에도 전시하고, 관심을 갖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구름은 바람이 움직이고, 사람은 사랑이 움직인다”
안토니 곰리와 미켈란 젤로를 좋아한다는 차주만 작가. 작가로서 철학이 분명하고 사색이 깊은 것 같았다.
이승택 선생에게서 칭찬받은 에피소드를 즐겁게 전했다.
“이승택 선생님께 ‘믿음만 있으면 건널 수 있다’는 철조망 작품으로 베를린 장벽에 한 백 미터 쭉 설치를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네가 거기서 초대 받아서 설치하고 오면, 내가 너를 천재로 인정할게’ 그랬거든요. 그리고 나서 전시 초대를 딱 받아가지고 ‘선생님, 저 초대장 받았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이 ‘그래, 그래 너 인정할게’라고 하셨어요. 이런 소소한 것이 무척 재미있어요.”
좋아하는 사상가를 물었더니, “구름은 바람이 움직이고, 사람은 사랑이 움직인다”라는 말을 답으로 내놓는다. 어떤 책이나 드라마에서도 인류를 향한 절대적인 사랑을 본 적이 없다며, 무형의 신, 절대적인 무한 사랑, 이것이 기준이 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답했다.
차주만 작가는 예술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는 사람을 움직이는 사랑, 그것도 예술로 풀어내는 무한 사랑을 설치하고 있는 작가인 듯 하다.
임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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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만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2회의 개인전을 국내외에서 개최하였다. 포츠담 미술관 초대전, 베를린장벽재단 초대전, 바벨스 베르크궁전 초대전, 창원 국제 조각비엔날레, 여수 국제미술제, 스위스 몽튀르 조각비엔날레, 모스크바 비엔날레, 9회 상하이 국제예술제, 부산비엔날레 조각 프로젝트, 부산비엔날레 바다 미술제, 상하이 Zhao gallery개관 기념전, 한중 현대미술전 외 다수의 국내외 전시회에 참여하였다. 2010부터 2014까지 DMZ 민통선 예술제 국제미술전(민통선 예술제 운영위) 미술감독, 2015부터 2019년까지 DMZ순례 국제미술전(사단법인 남북강원도협력협회) 미술감독, 2018평창 문화올림픽 DMZ 아트페스타(문화체육관광부, 강원문화재단) 미술감독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2016년 통일부 민간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예술가들'을 조직하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wnaks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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