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책만세 <7>- 우리 참 행복했어!
수정 : 2022-01-27 00:51:35
우리 참 행복했어!
▲임명숙: 파주에서 소확행을 찾아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새내기. 강아지 둘
말이나 글로 표현 하는 게 너무나도 어려운 감정들이 있다.
이제 노견 이라고 불릴 나이가 된 강아지들에 대한 감정이 나에겐 그렇다.
함께한 시간이 벌써 십 수 년이다.
처음 만났을 때나 함께하기 전을 기억하려면 한참 기억을 더듬어야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만큼 수많은 추억을 함께 하고 있고 수많은 감정들이 뒤엉켜있다.
아직도 보면 애교 많고 귀여운 아기강아지 같은데 벌써 노견 이라니.
건강한 것만으로도 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쨌든 그리 멀지않은 시간 안에 이별이 오리라는 생각을 하면 슬픔과 두려움이 마음속에 가득해진다.
그렇게 한참을 우울해하다가 문득 아직은 함께하는 이 시간을 이런 감정들로 소비하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불현듯 미안한 마음과 함께 행복했던 기억들과 현재의 모습을 떠올려 마음속을 가득 채우게 된다.
누나인 가루는 아직도 날 보면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배를 뒤집어 까고 바동대다 내 얼굴이 가까워지면 침 범벅을 해놓곤 신나서 달려가 장난감을 물고 온다.
때때로 내가 우울하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에 가루는 조용히 내 곁을 지키며 함께 있어주는데 마치 내 기분을 알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아 큰 위안이 된다. 강아지가 뭘 알겠어! 싶으면서도 아무렴 어떠랴. 내가 그것으로 위안이 되면 그만이지.
애기처럼 안겨있는걸 좋아하는 가루는 다른 가족들은 성격이 사나워서 산책을 가거나 집에 손님이 오면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하는데 나한테는 한없이 애교 많고 온순한 아이다. 산책을 나가서도 이리저리 산책길을 들쑤시고 다니며 맘에 드는 곳이 나오면 거기가 풀숲이든 아스팔트 위든 상관없이 드러누워 한껏 그 순간을 몸에 묻힌다. 그런 장소를 찾는 데에도 바쁜 가루는 주변을 지나가는 행인이나 다른 강아지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렇게 걷다 지치면 목 좋은 자리를 찾아 배를 깔고 앉아 한참을 뒹굴 거린다.
그런 가루를 보면 나른함에 전염되어 마치 그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처럼 나까지도 자리를 잡고 앉아 잔뜩 게으름을 부리게 된다.
이러한 추억들이 잔뜩 묻어있는 가루라는 단어는 나에게 평온과 위로의 이름이 되어버린 것 같다.
동생인 둥이를 떠올리면 웃음부터 나온다. 이 아이는 행동도, 표정도, 얼굴까지 어린아이 같다.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호기심과 행복으로 가득해 보이는 이 아이와 같이 있다 보면 나까지도 행복한 기분이 들어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즐거움으로 가득한 듯 밝아보이게 한다.
멈출 줄 모르고 살랑거리는 꼬리와 끝없이 내 무릎위에 자리 잡기 위해 내 주변을 서성이는 모습을 보면 이 삭막한 세상에서 난 퍽이나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기분까지 든다. 둥이와 산책을 나가면 그러한 감정이 더 심해진다.
이 아이에겐 세상 모든 것이 즐거운 호기심 덩어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온 몸으로, 몸짓으로 느껴진다. 둥이는 풀 한포기, 물웅덩이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전부 참견하고 나서야 발을 옮긴다. 그렇다보니 둥이와의 산책은 내가 끌려 다니기 일쑤고 잠시 한눈이라도 팔라 치면 어느 샌가 내 시야를 벗어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이리저리 한눈팔고 다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미아가 된 경험을 한 이후론 그래도 이젠 중간중간 나도 돌아보더라.
가루가 평화와 평온을 내게 선물한다면 둥이는 행복과 즐거움을 선물한다.
특히 둥이를 통해 내가 이 아이에게 참 가치 있는 존재이고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있다라는 걸 느낄 땐 뭐라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갖게 된다.
우리들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고 점점 나도 아이들도 나이가 들어 언젠가는 이별할 때가 올 것이다. 이건 비단 강아지들과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주변과 친구와 세상과 가족과 때가 되면 만남이 있었듯 헤어짐도 당연한 거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며 그동안의 삶 속에서도 수많은 경험들이 이미 존재하는 진리이기에 초연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선 이렇게 때때로 이별을 상기하는 이유 또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별의 때를 상기하며 현재의 나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행복의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한 스스로에게의 다그침이다.
언젠가 삶이라는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책을 덮을 때가 오면 그래도 ‘우리 참 행복했어’라고 하며 이별의 아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종반에 다다르고 있는 현재의 페이지에 최선을 다해 행복을 써내려가도록 노력하자고 이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가루야, 둥이야!
사랑해.
'내책만세'는 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세상이란 뜻으로, 파주 교하도서관 독서동아리입니다. 일년에 책 한 권 만들기를 목표로 매일 일상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2021년에는 자신들의 이야기로 각자 책 한 권씩을 엮어서 독립출판물을 냈습니다.이 책들에서 한 편씩 뽑아 <파주에서>에 연재합니다. (문의 시옷살롱 031-955-6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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