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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책만세 <5>-이혼하지 않고 살기

입력 : 2022-01-21 00:30:24
수정 : 0000-00-00 00:00:00

이혼하지 않고 살기

유재화

: 25년간의 전쟁 후 평화를 쟁취한 자

 

그를 만나 25년 동안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누구나 살면서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은 해 봤을 것이다. 아닌 사람은 복 받으신 겁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관계의 문제는 일방적인 것이 아님에도 나는 나의 과오를 몰랐다. 내 결혼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그의 미숙한 인격에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남편이 가져야 하는 인격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만들어낸 환상이었음을 깨닫지 못한 채.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알면서도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했다.

처음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아주 쉽게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항상 나의 결혼,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 왔고 우리의 이야기를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 이 이야기의 결말도 나와 있었다, 아니 나와 있다고 생각했다.

내책만세 동아리에서 글을 쓰면서 내가 이야기의 결말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이야기의 가운데에 서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 글을 읽었던 날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글을 읽는 동안 애써 감추어 놓았던 옛 감정들이 튀어나와 내 스스로가 너무 가여워졌기 때문이다. 잠시 울고 나니 마음이 시원해졌다. 글을 쓰는 동안 여러 번의 갈등이 찾아왔다. 그를 이렇게 씹어 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나 한 사람만의 시선만으로 다른 사람을 정의 내려 버린 것이 옳은가?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글은 쓰기로 했다. 내 마음의 정리를 위해서다. 얼퀴고 설퀴어 버린 그와의 25년 세월을 정리하고 새로이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이 이야기는 그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다.

 

결혼 전 나는 근자감에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와 함께한 시간 동안 나는 나 자신을 피해자라 생각하며 가여워하는 정체성이 모호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언제나 그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화난 얼굴을 하고 나와 눈을 마주 보지 않고 문을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면 나는 홀로 남겨졌다.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며 함께 행복과 사랑을 느끼고 싶었다. 나의 결혼은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많은 방법을 생각하고 실행했다.

30대에 나는 가장 어려운 방법이 이혼이라고 생각했다. 이혼의 과정과 결과가 나에게 가져다줄 많은 문제와 심리적 압박을 그리고 작고 소중한 나의 아기에게 가져다줄 충격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이제 50대인 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이혼이라고 생각한다. 쉬운 것은 매력이 없다.

 

 

그때 그 마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25년이란 세월이 흘러가 있었다. 그동안 나는 많은 것을 잊고 살고 있었다. 그와 결혼할 즈음에 나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나를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지 내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지자신감 충만했던 20대의 나는 생각한다. 받는 사랑의 기쁨보다 주는 사랑의 기쁨이 훨씬 크다고. 결혼 후 내가 어리석은 생각을 했구나 하고 후회했었다. 그리곤 미움과 슬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허덕이며 살았다. 지금 다시 돌아보니 나는 항상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이 서운하고 더 많이 슬펐던 것이다. 내 마음속의 자신감이 허물어지면서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외로움과 슬픔에 그를 미워하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묻어버렸다. 그걸 다시 꺼내오는데 긴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지금 우리가 이혼하지 않고 살고 있는 이유는 내가 그를 아주 많이 사랑했던 그때의 감정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의 결혼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제 이전보다는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25년의 쓴 경험을 바탕으로.

 

 

 

'내책만세'는 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세상이란 뜻으로파주 교하도서관 독서동아리입니다일년에 책 한 권 만들기를 목표로 매일 일상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2021년에는 자신들의 이야기로 각자 책 한 권씩을 엮어서 독립출판물을 냈습니다.이 책들에서 한 편씩 뽑아 <파주에서>에 연재합니다. (문의 시옷살롱 031-955-6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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