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을 건너온 역사(32) 10. 임진강에 산 사람, 미수 허목 (3) 다른 길, 연천을 찾아온 사람들
수정 : 2021-11-11 09:31:00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10. 임진강에 산 사람, 미수 허목
(3) 다른 길, 연천을 찾아온 사람들
‘양주를 출발해서 감악산을 향한다. 동행인 유군과는 입암에서 헤어져 고인이 된 송석우의 집을 찾았다. 매화나무는 그대로이고 벽에는 몇 해 전 써 준 기문이 미수 허목의 기와 함께 걸려있다. 썩은소를 건너 정극가의 집에서 잤다. 아침에 진수동 이참봉을 찾았다. 군영동에 이르러 허미수 어른을 뵈었는데, 늦게야 하직하고 징파도를 건너 옥계역에서 잤다.’
▲ 허목이 살던 연천 강서리 군영동. 뒤로 은거당 터가 보인다
윤휴의 금강산 유람기 ‘풍악록’의 첫 장면이다. 풍악록의 시작은 산천유람기가 아니다. 유람을 떠나기 위해 동행을 만나는 과정이다. 일행은 윤휴를 포함해서 넷. 외삼촌 김경과는 서울서 함께 출발했다. 도중에 유군, 유광선을 만난다. 그리고 다른 동행 정창기를 만나기 위해 임진강을 건넌다. 정창기를 만난 뒤에도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진수동 참봉 이언무 찾았고, 이언무의 아들과 함께 허목의 초당으로 간다.
군영동 허목 집에 온 일행은 은행나무 그늘 아래 앉았다. 초가는 온갖 화초로 가득했다. 일행은 짐 꾸러미에서 술과 과일을 꺼내 대작한 후 섬돌 위 일월석을 구경한다. 허목이 글자를 조각해 새겼는데 해와 달의 그림자가 석면에 비쳤다. 군영동 집 풍경은 허목이 쓴 ‘십청원기’, ‘석경기’에 묘사한 그대로다. 허목은 자신이 지은 오대산, 태백산 등의 기록과 ‘정허암전’을 꺼내 보여준다. 윤휴는 ‘선계의 설’로 화답한다. 허목은 지리서에서 읽은 금강산과 직접 본 동해의 모습을 적어주며 여행에 참고하도록 조언한다. 그리고 헤어지는 정표로 광풍제월, 낙천안토, 수명안분 열두 자를 써 준다. 허목과 헤어져 징파나루를 건너면서 윤휴의 금강산 유람은 시작된다.
▲ 허련의 십청원도. 연천 허목의 집을 그렸다.
당시는 1차 예송논쟁으로 남인세력이 정국에서 배제된 때였다. 허목도 삼척부사를 끝으로 물러나 10년째 연천에 머물고 있었다. 남인당파의 중심이던 허목의 집은 한미한 이들이 모이는 거점이 됐다. 윤휴와 함께 군영동에 모였던 인물들 면면을 보자. 윤휴는 젊어서 이미 실력이 검증된 선비였다. 하지만 북인이었던 가문이 인조반정으로 몰락하고, 병자호란의 치욕까지 당하자 일찌감치 벼슬을 포기한다. 북벌계획을 실행하며 정계를 주도하다 죽임을 당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유광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광해군의 복위를 꾀한 역모사건으로 처형됐다. 이 일로 벼슬길이 막혀 공부에만 매달리던 사람이다. 윤휴의 외삼촌 김경은 나중에 윤휴의 북벌계획을 도우며 정치적 부침을 함께했다. 진수동의 이언무는 아버지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과 화의하는 일에 참여한 일로 비난을 받았다. 이 일로 구설을 피해 향리에 묻혀 산 인물이다. 고인이 된 송석우는 감악산에 들어앉아 허목과 사귀던 원로였고 정창기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허목의 제자이거나 친인척들이다. 모두 정쟁에서 밀려 향리에 거처하거나 비판세력을 자처하며 의견을 교류하던 인물이다.
▲ 윤휴 일행이 건넌 썩은 소나무
“금상 4년(1663년) 봄, 윤희중(윤휴)이 송장로(송석우)와 함께 녹봉의 초라한 거처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희중과 헤어진 지 몇 년이 되었기에 매우 기뻐하며 하루 동안 머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돌아갈 때에 내가 중간까지 전송했는데, 진동 이경구(이언무)에게 들러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허목. 「정생의 초당에 제명한 기」 중에서)”
윤휴가 금강산 유람 길에 오르기 9년 전이다. 풍악록의 인물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윤휴가 여행길에 조문한 송석우도 살아있던 때다. 초당 주인 정생은 정창기의 조카다. 이들은 초당에서 매화를 감상하고 다음날 앙암 석벽을 구경한 뒤 헤어진다. 누구는 명대로 살다 갔고, 어떤 이는 일찍 세상을 떴다. 또 나중에 누구는 정쟁에 희생되지만 허목은 계속 임진강에 있었다. 그와 함께 강은 꾸준히 새로운 손님을 맞이했다.
▲ 진수동 이언무의 조상묘. 윤휴가 허목을 만나기 전에 찾았던 곳이다.
“금상 13년(1672년) 봄, 권공산(권대재)이 권저작(권환), 권조대(권수경) 두 사람과 함께 석록의 산속 집으로 늙은이를 찾아왔기에 적적하던 중에 마음을 툭 터놓고 며칠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김현서(김하규)도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전날 밤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 현서가 임단에서 객사하였다. 지금 그 이름이 종이에 적혀 있는데 사람은 이미 죽고 없다.(허목. 「웅연범주도에 대한 기」 중에서)”
유광선은 금강산 길목에서 허목과 헤어진 뒤 이렇게 말한다. “산 속 신선늙은이를 만나봤으니 헛걸음은 되지 않았다.”고.
이재석 DMZ생태평화학교 교장/ [임진강 기행] 저자
#1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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