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기자가 기자를 징계? 누가 누구에게 재갈을 물리고 있는가?

입력 : 2020-08-21 04:30:21
수정 : 2020-08-21 04:32:01

기자가 기자를 징계? 누가 누구에게 재갈을 물리고 있는가?

 

최근 박재동 화백 관련 미투사건이 성평등시민연대와 만화계성폭력 진상규명위원회의 가짜 미투 의혹 제기로 반전의 상황을 맞았다. 성평등시민연대와 만화계성폭력 진상규명위원회는 7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OO 작가가 2011년 박 화백에게 주례를 부탁하러 갔다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장소에 대해 계속해서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가 729일 경향신문에 박재동 화백 미투 반박 기사를 올렸지만 ‘2차 가해라는 지적을 받고 4시간 만에 삭제됐다. 그리고 징계위에 회부되어 정직 1개월이란 중징계를 받았다.

강진구 기자 징계에 반대하는 언론인 학자 시민 등은 징계위가 열리던 812일 기자회견을 마친 뒤 2000여 명이 온라인 참여한 징계 반대 청원서를 경향신문에 제출했다. 이 일을 계기로 미디어에서 자주 보게 되는 미투’, ‘피해자중심주의’, ‘2차 가해라는 개념에 대해 되새겨보았으면 한다.

임현주 기자
 

징계위에 가기전에 응원하는 시민들에게 꽃을 받고 소회를 밝히고있다

-----------------------------------------------------------

<성명>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의 징계를 반대한다

 

경향신문이 '박재동 화백 미투 관련 의혹'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강진구 기자를 812일 징계위원회에 회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경향신문 독립언론실천위원회(이하 독실위, 위원장 유희곤 기자)가 강 기자의 징계위 회부를 요구하며, 성범죄보도준칙을 어긴 점 기사를 편집국 보고 없이 출고한 점 보도 이후 유튜브 등에 출연해 경향신문 구성원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강진구 기자의 해당 보도의 편에 서겠다는 게 아니다. 다만, 미투 관련 의혹 보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자가 징계를 당하는 것은 진실 추구라는 언론의 대원칙이 흔들리는 중대 사건이라고 판단하고 경향신문에 신중한 결정을 촉구하는 바이다.

 

우리가 경향신문에 신중 결정을 촉구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박재동 화백 관련 사건은 '성범죄 사건'이 아니다.

현재까지도 박재동 화백 사건은 성추행을 당했다는 일방의 주장이 보도된 가운데, 박재동 당사자는 이를 인정하지 않아 양쪽의 다툼이 있는 사안이라는게 객관적 상황이다. 박재동 화백은 피해 주장과 관련해 형사 재판에 회부된 바도 없다.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처로써 경향신문이 성범죄보도준칙을 제정한 것은 타당한 것이며 기자들은 이를 최대한 준수해야 한다. 그러나 경향신문이 강 기자를 이 준칙의 위반 이유로 징계 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건이 성범죄로 의심의 여지없이 결론이 난 상태여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는 강진구 기자의 징계는 물론, 그가 성범죄보도준칙에 따라 징계위에 회부되는 것 자체가 합당한 처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둘째. '피해자 중심주의'가 취재 및 보도 과정에서 무비판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현재 페미니즘 사회 내부에서조차 피해자 중심주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분분한 상태이다. 주지하듯,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말은 2000'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90년대 내내 우리 사회가 피해자의 말보다는 가해자 쪽의 해명에 기반하여 성폭력 사건을 대해왔다는 반성적 성찰에 따라,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취지로 당시 100인 위원회가 '피해자 중심'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훗날 '주의'라는 말이 더해져 현재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권위적 언어로 성장했다는 게 페미니즘계의 공통적 견해다.

그러나 이후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용어가 피해 호소인의 주관을 판단의 최종심급으로 위임한 것처럼 대중에게 잘못 전달 되고 있어, 페미니즘 내부에서조차 이 용어를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논란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왔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 절대주의'가 아니며 피해자의 말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져선 안된다는 얘기다. 이는 우리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가치와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가치가 상호 대립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경향신문은 2000년대 초반 제기된 '피해자 중심주의' 용어의 뜻을 2020년대에 무리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야야 할 것이다.

 

셋째. 언론과 언론인에게 페미니즘은 해석의 대상이지 맹신의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

페미니즘은 우리 언론이 존중하고 참조해야 할 중요한 사조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언론인은 사건의 보도과정에서 사실관계를 논리적으로 확정해야 하는 '특수 직업인'이다. 재판과정과 마찬가지로 취재과정에서 언론인은 미투의 편미투 반대 편에도 머물지 않으며 오로지 진실만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게 우리의 입장이다. 이는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이 국제 언론사회의 합의된 저널리즘 관행이다. 미투 보도의 원조인 미국 주요 언론은 물론 영국 유수의 언론들이 미투 폭로자들을 처음 단계에서 부터 '피해자'(victim)라고 적시하지 않고, '예비 피해자' 또는 '피해호소인'(alleged victim) 등으로 보도하고 있음을 우리는 눈여겨 살필 필요가 있다. 세계 어느 문명국에서도 취재 과정에서 사실을 체크해나가며 진실에 다다르는 언론의 정당한 활동을 '2차 가해'라 경원시하는 곳은 없다.

 

경향신문은 오랜 시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복무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 언론이다. 만일 강진구 기자에 대해 섣부른 징계에 돌입한다면, 경향신문에 대한 시민사회의 신뢰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것이다. 강진구 기자에 대한 징계위원회의 즉각적 소집 철회를 요구한다.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의 징계를 반대하는 언론인-지식인-시민사회 일동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