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나눔이다> 인간관계의 모순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 추상화가 정재철
수정 : 2022-01-19 08:00:01
<예술은 나눔이다>
인간관계의 모순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 추상화가 정재철
▲Contradictory boundary 97cm x 162cm oil on canvas 2019.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니 오일 물감들이 지천이다. 벽에 비닐이 높게 쳐 있다. 그림 그리다 벽에 물감이 튀는 걸 막기 위해서다. 작업 중인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10호정도 되는 작은 캔버스에 물감이 잔뜩 묻어있다. 두꺼운 물감들이 컬러풀한 몸이 되어 이리저리 캔버스를 유영하고 있었다. 그에게 어쩌다 추상화를 그리게 되었는지 물었다. “처음엔 구상 인물을 그렸는데 그리다 보니 붓질이 멈추어야 하는 경계를 느끼게 됐고 그걸 넘어 자유롭게 붓 가는 대로 그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추상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거라 말했다.
▲Middle ground 65cm x 91cm oil on canvas 2021
구상에서 반 구상으로 그리고 완전 추상으로
그의 그림은 몇 단계를 거쳐 왔다. 2013년 인사동서 첫 개인전 전시를 했을 때 그의 화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순 혹은 부조리에 관한 고찰이었다. 아프리카 여행 중 들은, 알비노 환자(멜라닌 색소 합성이 불가능해 피부 등이 하얗게 변하는 선천질병)들이 같은 흑인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는 것. 화려한 세기의 여배우 메릴린 먼로의 생이 실상 비참했다는 사실. 쿠바혁명을 주도한 체 게바라의 역설적인 삶을 구상적 인물로 표현했다. 그는 자기 작업 노트에서 모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관계가 쉽게 형성되고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보니, 모순된 상황을 경험하거나 간과하게 된다. 나는 인물을 소재로 하여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인간관계 속 감정을 개인적인 해석을 통해 표현한다”.
▲Unfamiliar face 194cm x 130cm oil on canvas 2018
얼굴이 사라진 자리에 내면이 떠오른다.
2017년까지의 그의 작품은 인물이 해체되면서 두 개의 얼굴(Double Face 아트리에 터닝), 그리고 낯설음 (2015. Unfamiliar. JJ중정 갤러리), 낯선 얼굴(UNFAMILIAR FACE,갤러리 메이)로 변화된다. 두 개의 얼굴은 얼굴의 형상이 일부 남아 구상적 형태와 추상화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추상 형상도 또 다른 얼굴인 셈이다. 낯설음과 낯선얼굴 전시작품에선 얼굴의 형태는 식별되지 않는다. 대신 강렬한 색들과 선들의 자유로운 붓질을 통해 주변 지인들과의 관계가 포함된 그의 세계를 감정과 생각으로 읽어내고 추상적 표정으로 그려낸다. 이은정 비평가는 ‘재현의 파열과 얼굴 너머의 목소리’란 비평을 통해 정재철의 이 시기 작품에 대해 공감 가는 글을 썼다. “… 중략, 그리하여 격렬한 선들의 분투와 색채의 폐허 속에서, 이 세계의 압도적인 붕괴 속에, 얼굴들은 오직 찰라적으로만 들려오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게 된다”
▲Unfamiliar face 73cm x 61cm oil on canvas 2014
미니멀 톤으로 우리 삶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을 그린다.
2019년부터 확고하게 달라진 그의 작품은 이제 인물과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며 더 단순하게 보인다. 사용하는 색을 줄이고 혹은 비슷한 톤의 색을 사용해 더욱 통일된 감정과 깊어진 생각의 내면을 그린다. 구상의 요소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임대식 평론가는 ‘추상의 이유’란 평론을 통해 그의 작품을 이렇게 평가했다. “…. 중략, ”추상은 생각하는 방법을 구체화하는 정신적 활동이다. ...중략, 정재철 작가는 우리 삶의 모순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도 우리 삶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을 그리고 있는 작가다.” 임 평론가의 말대로 그는 善을 추구하는 작가인듯하다.
▲ 조커 추상
최근 두 개의 이미지를 한 캔버스에 담는 방식으로 작업해 주목받는다.
최근 그는 두 개의 이미지가 한 화면에 숨겨져 있는 렌티큘러(Lenticular)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조커의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은 다음 그 위에 다시 붓칠해 아주 적은 부분만 남기고 다른 그림을 그린다. 전혀 다른 이미지 두 개가 한 평면에 담겨 있는 셈이다. 두 개의 이미지를 렌티큘러 방식으로 제작해 지나가면 처음 그렸던 이미지가, 또 멈추어 서면 두 번째로 남은 이미지들이 보인다. 그는 이런 작업에 대해 “나의 추상 작업은 과정이 중요하다.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이미지로 정착되었는지에 대한 나의 연대기적 기록이다”라고 말한다. 추상화를 그릴 때 구상의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구성화 실력이 있어야 어느 부분에서 색과 면의 악센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추상화를 잘 모르는 나에게도 그의 작품은 공감이 간다. 색깔도 편하고 구성도 제대로인 듯싶다.
▲ 정재철 화가
성실하고 자유로운 그의 정신이 인생길을 만든다.
정재철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 강서고등학교 미술부에 들어가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꿈을 성실하게 성취해 왔다. 홍대 회화과를 나왔고 파주출판단지 박영사 갤러리 2층에서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 특별한 욕심도 없어 보인다. 그런지 몰라도 그의 얼굴은 편하다. 그는 오토바이를 즐겨 탔고 수영을 좋아한다. 자유로운 그의 성격인 듯싶다. 나이가 마흔 셋인데 독신이다. 결혼은 기회가 오면 하겠지만 지금까지는 별 관심이 없다. 아낌없이 쓰는 유화물감을 충당하기 위해 인천예고에서 미술 실기 지도를 했고 올해 3월부턴 제주에 있는 애월고등학교에서 1주일에 2번씩 같은 일을 하기로 했다. 큰 돈벌이는 없어 보인다. 작업실 근처의 경양식집에서 둘이 맛있게 파스타와 피자를 먹었다. 대화 내내 편한 대화가 이어졌고 그의 순수하고 여유로운 세계관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다시 작업실로 돌아갔고 그는 또 열심히 자신의 본성대로 캔버스 나이프를 집어들 것이다. 왼손에는 큰 붓을 들고 말이다. 상큼한 오후다.
스튜디오: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37-9 갤러리 박영사 2층
전화: 010 3748 2478, E Mail: jaechul1980@naver.com
#1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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