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나눔이다> 건달 시리즈로 인간욕망에 물음표를 던진다 조각가 김원근
수정 : 2021-12-21 05:44:41
예술은 나눔이다
건달 시리즈로 인간욕망에 물음표를 던진다
조각가 김원근
▲ 이천 설봉공원에 있는 높이 350cm의 작품
블랙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情스런 조각 작품들
그의 덩치와 그의 조각들은 닮았다. 퉁퉁하고 무게가 있다. 그러나 그가 그의 작품을 통해 나타내는 메시지는 둥실한 형상과 표정의 둔탁함에도 불구하고 날카롭고 시니컬하다. 즉 블랙 코미디다. 70~80년대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에서 건져 올린 그의 생존철학이 녹아있다. 추측컨대 그는 세상의 만만치 않음을 오래 느끼며 살아온 듯하다.
그가 작업과 생활 속에서 퍼 올려 작업실 한켠 베니다판에 써놓은 것은 “돈 생각하지 말고 작업 에만 집중하라”다. 돈 부족이 작업진행에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고서는 이런 문구를 써넣을 리 있겠는가? 이런 글 말고도 김훈 소설가가 말했던 ‘작업은 전투와 같고 표현은 양보할 수 없다’라든가, 헝가리 피아니스트인 조르주 치프라가 신념으로 삼고 정진했던 ‘세상이 끝날 때까지 녹슬지 않은 실력’ 같은 문구들이 제법 많이 쓰여 있다.
그는 클래식 방송을 좋아하는데 DJ가 멘트한 부분을 기억하고 적어놓는다. 그는 덩치답지 않게 의외로 감성적이고 꼼꼼한 작가다. 남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에서 의례 나오는 여자이야기도 잘못 와전 될까봐 직접적 표현을 삼간다. 그는 2021년에 살고 있지만 그는 오래전 청춘의 기억 속에서 작업의 모티브를 찾는다. 그의 작업은 건달시리즈다. 정확히 말하자면 건달로 상징된 욕망덩어리의 남자인간을 표현하고 있다.
퉁퉁하고 무표정한 건달들은 치열한 생존경쟁에 던져진 우리들을 상징
욕망의 대상들인 명예, 돈, 성공, 행복들을 합치다 보니 왠지 비대한 인물이 되어야할 것 같아 그의 형상들도 그렇게 만들었다. 그가 캐릭터로 만들어 내는 건달 혹은 어깨들은 차라리 순진하고 피곤해 보인다. 얼굴은 거의 무표정이고 입은 일자로 굳게 닫혀있다. 자신을 장악하고 있는 보스 밑에서 명령 따라 굳은 일을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꼬붕들의 피로가 묻어난다. 그의 생각을 생존상황으로 환치하면 보스는 현실이고 꼬붕들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그는 건달시리즈를 통해 현대남성들의 탈 현실욕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뚱뚱하고 배나온 기형적인 몸으로 권투글로브를 끼고 무표정하게 서있는 선수들의 모습은 실상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누구나 겪고 있는 무력감과 자유에의 욕망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불교철학에 공감해 작업하는 공력 높은 작가
“사실 우린 모두 다 사각의 링속에 던져진 선수들과 같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강해져야 하고 날렵해야 하지만 업보와 운명으로 상징되는 배나옴, 살찜 같은 것 때문에 축 쳐져있고 느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말이다. 그는 무종교지만 불교철학에 공감해 작업을 한다. 우린 포기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고난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라는 불교의 보왕삼매론을 연상케 한다.
그의 작품은 연극의 한 장면을 옮겨다 놓은 듯 한 연출적 작품들이 많다. 예를 들면 권투선수가 있고 매니저, 매니저의 부인이 한 세트인 조각들을 보자. 힘빠진 선수와 그를 채근하는 매니저 그리고 무관심한 그의 부인이 서 있다. 능력은 없는데도 상대선수를 이겨야만 하는 생존경쟁과 자기와 관계가 없는 상대에 대해 철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현 세태를 풍자한 작품이다.
또 건달이 여자를 들어 올리고 있는 작품들에 대해 그는 “필리핀 보라카이 관광유람선이 해안 접안하면 런닝만 걸친 필리핀 남자들이 한국인 여성들을 들어서 나르는 걸 보고 모티브를 삼았다”고 설명한다. 기계적으로 일하는 남자들과 애써 무표정한 모습으로 안기는 여자들의 모습에서 시니컬한 남녀관계의 간극을 발견한다. 즉 여자를 안아 들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애인으로서의 다정함과 사랑과는 거리가 먼 꿈 같은 상황이다. 그래서 꽃을 든 건달의 모습에서 그의 휴머니즘은 진짜 블랙코미디가 된다. 꽃을 들었지만 건달의 표정은 우울하다.
꽃 시리즈에 녹아있는 순수는 한때 우리들의 사랑고백 이었다.
“예전에는 남자들이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집까지 꽃을 들고 찾아가 제대로 고백도 못하고 돌아오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꽃을 들고 찾아갔을 때 그녀의 집 앞에서 그녀와 함께 있는 다른 남자를 발견했을 때 우울감이 엄습하지 않았겠나?” 이어 그는 “옛날에는 여자에게 거절을 당해도 화풀이하거나 상대를 해코지 하지 않았다. 그냥 속으로 삭히며 슬픔가운데서도 그리움을 간직하는 순수정서가 그땐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편하다. 편한 모습으로 서있고 색깔 또한 은은하며 불교단청에서 옮겨온 문양들이 조각 작품 곳곳에 있다. 색깔과 형태가 참으로 조화로운 게 김원근 공력의 무르익음을 증명한다. 그는 작품을 그라고 생각한다. “손이나 다리를 들고 10년 씩 서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작품을 편하게 서게 한다”고 말한다. 그의 든든한 뒷모습과 작업실 곳곳에 서 있는 조각들이 일시에 어우러져 그가 이 작업실 공간에서 참 행복할 것 같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문을 나오는 순간 그는 성실한 낭만주의자가 틀림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김원근 010 3822 6441, bsbsdf@naver.com
김석종 기자 #1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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