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나눔이다> 검은색의 작가 이화섭
수정 : 0000-00-00 00:00:00
검은색의 작가 이화섭
▲ 중앙시장 장생도 oil on canvas 2019 40F
검은색을 쓰지 말라고 가르쳤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색과 색의 조합원리를 풍부하게 알게 하고자 했던 가르치는 이의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검은색은 일종의 금기로 인식되었다.
전통적으로 한지에 수묵이라는 재료로 그림을 그려 왔던 우리 미술사에 이른 바 서양미술의 첫 수입통로에는 인상주의를 접했던 일본 유학생들의 역할이 있었고 이러한 색채관이 우리 미술계에 고정관념으로 축적된 기묘한 교육 방식이었다. 그럴 것이라면 검정색을 만들지 말 일이지, 만들어 놓고 왜 못 쓰게 하느냐고 항의했던 답답한 시절이 있었다.
▲ 대장간 oil on canvas 2019 60F
검정색은 무엇인가. 검정색은 어두움이다. 반대로 흰색은 밝음이다. 그러나 어둠을 전제로 밝음이 있고 밝음 또한 어둠을 전제로 말할 수 있으니 이 둘은 서로 분리되지 아니하며 이 둘은 따라서 통일체인 셈이다. 다만 현상적으로 우리는 이를 구분할 따름이다.
반야심경에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색(色)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니 물질을 뜻한다. 공(空)은 비어 있는 것이니 없음을 뜻한다. 그러나 있음은 없음에서 비롯되었고 없음은 있음을 만들어 내었다. 이것이 우주의 원리이자 모든 것이 아니겠는가. 이로써 음양의 논리가 파생하고 둘 간의 상호 작용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 이엉엮기 한반도 oil on canvas 2019 60F
노자의 도덕경에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요,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이라는 명제가 있다. 이것이 도(道)라고 인식하는 순간 이미 도는 도가 아니고, 명명하는 순간 이름은 이미 이름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세상의 모든 이치를 정지된 개념이 아니라 움직이고 변하는 발전하는 상태임을 뜻하는 변증법적 사고체계일 것이다.
내게 위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작가가 있으니 바로 이화섭 작가다. 그는 검정색을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 검정색을 왜 쓰느냐, 안 쓰면 안 되냐 라는 질문이라도 할 경우 눈 동그랗게 뜨고선 “왜요?”라고 반문할 게 뻔하다. 그런 만큼 그에게는 검정색은 그저 많은 색들 중 하나일 뿐이고 그림을 그리고 표현하는 과정에 필요한 도구라는 인식 외에 어떤 금기도 없다. 그의 성격 또한 어디에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편이어서 필요할 경우 어두운 곳으로 숨어 버리고자 하는 일종의 피안 같은 편의장치가 아닐까 하는 재미있는 상상 또한 해본다.
어쨌든, 따라서 그의 그림에는 검정색이 화면 전체를 지배한다. 물론 그렇게 보이지 않는 작품들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 그가 검정이라는 자신의 空을 바탕으로 ‘드러냄’이라는 ‘色’을 통해 이끌어 낸 생애 첫 개인전인 “바라보다” 전을 펼친다.
▲ 태평동 새벽 골목 oil on canvas 2019 40F
그는 이 검정을 통해 그가 본 우리 사회와 그 속에 살아가는 자신을 그렸다.
‘공구들’, ‘기다림’, ‘낡은 신발’, ‘달밤, 남한산성’, ‘대장간’, ‘도시의 달빛’, ‘월인천강1’, ‘원인천강2’, ‘태평동 새벽골목’, ‘판매와 구걸’, ‘장날 미장원’, ‘화성 장안문’ ‘중앙시장 장생도’, ‘ 뭘 그려야 하나’, ‘이엉 엮기 한반도’ 등 출품작 25점을 통해 그가 바라본 본인의 현실과 걸어 온 삶의 흔적과 꿈꾸는 세상을 그린 것이다.
이화섭 작가가 먹고 사는 통로는 주로 벽화작업과 공공설치미술 작업을 통해서이다. 이러한 일거리가 없을 때는 새벽 인력시장을 기웃거려 일일 노무자라는 거친 노동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몸을 굴려 받은 일당은 그의 살이 되고 피가 되어 어제와 오늘을 살아 있게 한 희망의 자양분이었던 셈이다.
▲ 기다림 oil on canvas 2019 60F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그의 작품 중 나를 가장 울렁이게 한 작품이자 대표격으로 ‘기다림’이라는 그림이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새벽 인력시장에서 선택 받지 못한, 그리하여 그날은 일을 하지 못해 일당을 받을 수 없는 서글픈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심경을 투영했을 작품이 바로 ‘달밤, 남한산성’이다. 이렇게 두 작품을 연결하여 볼 때 가슴 깊은 곳을 자극하는 떨림이 전해져 온다. 이어지는 작품들 ‘태평동 새벽골목’, ‘도시의 달빛’, ‘낡은 신발’, ‘공구들’, ‘대장간’ 등속 역시 그 연장선의 고백이다.
이 외 ‘판매와 구걸’은 팔리지 않아 고단한 채소 노점상인 담배 피는 할머니의 배경으로 표를 구걸하러 오는 정치인의 유세단을 배치하여 현실정치의 허황된 단면을 풍자하였다. 그래서였을까. 비슷한 채소 노점상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중앙시장 장생도’를 그린 작가의 심정에는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의 작은 희망과 꿈을 담고 싶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 장날 미장원 oil on canvas 2019 100M
‘장날 미장원’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중은 삶의 고단함을 유희와 해학으로 달랬던 슬기로움을 발휘했음을 보여 주는 정겹고 아름다운 수작이다.
열거된 작품들 말고도 이번 전시에서 그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은 다양하다. 이 정제되지 않은 야생 당나귀 같은 그의 언어들 속에서 그의 진실을 찾아내는 것은 비교적 쉽다.
그의 앞에 놓인 작품세계의 길이 더욱 아름답기를 빌며 그 세 번째로 이어지는 릴레이 “바라보다”전을 축하한다.
2020. 2. 9
화가 김종도
------------------------------------------------------------
이화섭 화가 프로필
경원대학교 회화과 졸업
성남 제1조합운동장 벽화 제작성남문화재단 공공미술 프로젝트 - 콩닥콩닥 예술공단 큐레이터 강원도 영월 공공미술 프로젝트 참여
포천 아트밸로 진입로 공공미술 프로젝트 팀장
강원도 횡성 공공미술프로젝트 참여
W-Line 경남 김해 마을 어귀길 풍경특화사업 벽화팀장 제천시 기차마을 벽화 참여 그 외 다수의 단체전시 참여작가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