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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입력 : 2019-02-21 15:30:09
수정 : 2019-02-21 15:30:20

 

 

과수원집 일곱째 딸 70 넘어 그림을 시작하다

저자 이재연은 1948년 충남 유성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배과수원 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벼이삭이 누렇게 영글어 고개 숙인 들판 신작로 길을 등하교하며 서울로 갈 꿈을 키웠습니다. 대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여자라서 거기서 학업을 멈추어야 했습니디.  

두 아들과 남편 뒷바라지에 수십년을 보내다가 남편이 하늘나라로 간 다음, 다육식물에게 사랑을 주며 허전함을 달랬습니다. 어느 날 반려식물에게 예쁜 화분을 만들어주고 싶어 도자기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넣고 싶어서 70이 다 된 나이에 도서관 그림동아리 문을 두드렸습니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밥 먹고 손자 보는 시간도 아까울 만큼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 연습을 위해 조선시대 픙속화첩 한 권을 따라 그리기도 했습니다. 

 

할머니의 생활사

어머니(할머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봤는지요. 경제성장의 이면에 많은 사람들이 가려졌지만 ‘시대를 잘못 만난’ 여성의 삶은 더욱 그랬습니다. 딸이든 아들이든 사교육비를 엄청 들이는 지금과는 달리 그땐 여자라는 이유로 초등학교도 못 다닌 사람이 많았습니다. 놋그릇 이야, 쌍둥이 언니 이야기는 근대화의 이면에 가려져있던 할머니들의 삶과 생활을 생생하게 알려줍니다.

 

진솔한 이야기의 힘과 투박함 속의 감동

이 책은 저자가 지금은 없어진 고향을 기억하며 그린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언니에게 들은 “옥자 언니 머리 깍던 날”(99쪽)을 제외하면 모두 직접 보고 겪은 일들을 한 장 한 장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 없는 저자이기에 그림은 좀 투박하지만, 그래서 더 ‘우리의 이야기’ 같습니다. 이 책은 대부분의 어른들에게 잊었거나 없어진 고향에 대한 기억을 재생시키고, 아이들에겐 할머니 세대를 기억하게 할 것입니다.

 

용기와 희망을 주는 책

이 책의 저자는 그림을 배우면서 제2의 인생을 맞이했습니다. 남편과 아들 뒷바라지, 그리고 손주들을 키우느라 자신의 재능이나 취미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저자는 이제 하루 시간이 아까울 만큼 그림에 시간을 쏟습니다. 마음도 훨씬 건강해졌습니다. 그림의 매력에 푹 빠져 지금은 ‘한국의 모지스 할머니’를 꿈꿉니다. 모지스 할머니는 76세에 그림을 배워 102세까지 살며 1600 여 점의 그림을 남긴 미국의 국민화가입니다.  
세련되지 않아도 누구나 따라하고 싶을 만큼 진솔한 그림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비슷한 삶을 살았던 어른들에게 ‘나도 해볼까’하는 용기를 줄 것입니다.

글 김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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