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나눔이다 - 누워 그린 육아일기
수정 : 2018-06-29 16:18:39
누워 그린 육아일기 -
정정원
별이다.
광활한 우주에 박힌 오롯한 점 하나, 까만 하늘에서 오롯이 반짝이며 빛을 뿜는 존재. 우리는 모두 별이고 별을 낳고 길렀다. 그렇게 위대하단 말인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는 말인가.
헤이리 예술마을 루니크 앤 카페(예술마을길 93-16)에 화가 정정원의 작품 <누워 그린 육아일기>에 별이 있다. 이곳에 가면 나에 대해, 무수히 많지만 분명하게 빛나는 우리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내안에 깊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이제 사랑한다 생각했는데, 이제 화해했다 생각했는데 잘 덮어둔 상처를 들춰내 형광등 밝은 곳에 비춰보는 것만 같다.
“아이 어릴 때 어떠셨어요?”
“힘들었죠. 우울했고.”
“그런 거예요. 제 전시가.”
스프링 노트에 낙서처럼 그렸지만 낙서라고 치부할 수 없는 울림이 있다. 손바닥만한 작은 스케치가 나를 우뚝 멈춰 서게 한다. 털이 덥수룩하게 온몸에 난 캐릭터가 아이를 안고 있다. 안고 있는 팔은 떨고 있고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아이가 얼마나 무거웠으면, 이 순간이 얼마나 현실이 아니길 바랐으면, 나를 제외한 밝은 세상이 얼마나 보기 싫었으면 저리도 질끈 눈감고 있을까. 온 살에 찌꺼기가 덕지덕지 붙은 기분, 살 찐 내 몸도 무거운데 내려놓을 수도 없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라는 자리. 내가 그랬다. 첫 아이가 안아 달라 보챌 때 털이 온몸에 덮인 딱 저런 캐릭터였다. 내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 본 순간이 몇 날이나 되었을까, 눈을 감지 않으면 하루하루 타들어가는 속을 감당할 수 없었다.
급기야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죽으면 평화가 올 거라 생각했다. 풀꽃이 되어 날고 싶었다. 땅이 없는 곳에서. 정정원 씨도 ‘별이’가 10개월 무렵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그림에 ‘안녕’이라고 제목 붙였어요. 죽고 싶은 생각, 안녕이에요. 이제 다 지났으니 안녕이에요.
별이가 2개월 때 움직이다가 옷이 벗겨진 모습을 보고 웃으니 별이는 당황해 해서 미안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귀한 인격체로 배려하면서 존중할게요”
4개월에 첫 이유식을 했다. “별의 요리사가 된 아빠, 저녁 한 스푼에 별의 눈빛이 달라졌다”
5개월에 별은 날았다. “별의 제1놀이터는 아빠 팔, 별은 자신이 새라고 생각하는 듯, 우우우우 소리를 낸다”
6개월에 별은 발을 잡는 묘기를 부렸다. “별은 무언가 잘 하면 보라고 우우우 하고 소리를 낸다. 앞니 네 개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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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월, “드디어 1살, 돌. 돌잔치 대신 명동성당 한마음 한본부에 돌 기부를 했다. 간만에 우리다운 결정을 했다. 별에게 주는 선물 1.화내지 말기, 2.힘들수록 웃어주기, 3.무슨 일이 있어도 취소, 포기, 도망은 없다, 4.내가 할 수 없으면 기도하고 맡기자!”
다섯 살 별이는 아빠에게 달을 따 달라고 한다. “달 따줘, 아빠 달 따줘, 달 조아, 달나라 가고 싶어, 난 별나라에서 왔어?”
여섯 살 별이는 엄마에게 묻는다. “나의 파랑새 별, 매일매일 운다. 속상해, 치, 모야, 엄마, 가! 내가 할 건대, 엄마 땡강, 미안해, 왜 내가 태어난 줄 알아?”
신은 이 땅의 조화를 위해 오늘도 창조를 거듭하고 있다. 이 밤 어디선가 무수한 곳에서 커플들은 신의 부름에 답하고 있는 것이다. “참 희한했어요. 일을 시작하려고 하던 때에 제가 할 일을 순조롭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나니 바로 아이가 생긴 거예요.” 정정원 씨의 남편 조각가 김김영준 씨는 심한 불면증이 있었다. “별이를 키우며 한 시간, 두 시간 푹 자기 시작했어요. 네 시간이나 푹 잤을 때 정말 좋았어요. 아이를 안고 재울 때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었지요. 에라, 모르겠다, 아이가 내 가슴 위에서 자는데 아이 재우는 일 말고 뭘 하겠어, 나도 자자,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느긋해졌지요. 장애인들이 느려도 목표지점에 못가는 것은 아니듯, 제 삶도 느리게 가면 어떠하리, 이런 깨달음을 얻었지요.” 우리는 아무도 아닌 게 아니라고, 반짝여서 무언가를 비추는 별로 태어났다고 정정원 씨의 전시가 말한다.
이런 생각, 그저 나는 것일까? 아이들이 잠든 고요한 새벽에 나를 보면 이유 모를 슬픔 한 덩이가 피어난다. 내 슬픔도 어딘가에 뿌리 내려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하는 많은 새벽을 보내다 보면 신의 섭리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정정원 씨가 그린 ‘새벽’에 동그랗게 피어난 슬픔 한 송이가 있다.
아침이 되면 우리는 알 수 없는 유혹을 만나기도 하지만 또 기쁜 순간을 맞이하며 아이가 자란다. 그러던 어느 날 정정원 씨는 ‘세월호’의 황망함을 맞닥뜨렸다. 이런 말도 안되는 사회 속에서 별이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그래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술을 다문, 푸르게 야무진 큰 별이를 그렸다. 신은 우리 가슴에 별을 심어주었고 별을 낳게 했다. 고통과 번뇌와 부조리 모두 견디고 감당할 수 있는 존재를. 세상 모두 안을 수 있는 존재를. 우린 원래부터 감당할 수 있었던 거다. 그러기에 우렁차게 울며 나온 것이다.
정정원 씨의 <누워 그린 육아일기> 전시에 아이를 데리고 혹은 남편과 함께 가면 사랑을 말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기쁨도 슬픔도 외로움도 모두 다 있는 거라고 그렇게 사랑이 커지는 거라고 카페에서 내려다보이는 헤이리 멋진 여름 풍경 속에서 여유롭게 말할 수 있다. “엄마들이 이런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사진보다는 내 손으로 표출하는 글이나 낙서, 그림 같은 것으로 찌푸려진 표정, 이상하게 여겨지는 시간, 그런 것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는 기회를요. 이 전시를 준비하며 한 장 한 장 꺼내 본 육아일기가 저를 한층 더 키워주었어요.”
이 전시는 사단법인 헤이리 예술위원회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파주시에서 후원하는 문화마을 조성지원 사업 ‘2018 어디서나 그리미다展’의 일환이다. 6월 17일에 시작했고 7월 1일까지 이어진다. ‘2018 어디서나 그리미다展’은 헤이리 예술마을 내 30곳 카페 공간 및 갈대광장에 있다.
허영림 기자
-작가 약력-
화가
6년 동안 육아 중
헤이리 천사의 시 작업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작업 중
-전시 제목-
누워서 그린 육아 일기
2013 ~ 2018년 그림일기 중에서 선택하여 전시
-전시 장소-
헤이리 예술마을 루니크 앤 카페(예술마을길 9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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