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흔들리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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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흔들리지 않기 위해
여름휴가를 다녀오며 뉴스를 끊고 살았기에,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KBS 9시 뉴스(8월 12일자)를 골라 보았다. 예상대로 였지만, 경악할 수준이었다. 양궁에서 2관왕을 한 선수이야기가 톱 뉴스였고, 그 뒤를 잇는 것이 ‘강풍에서도 명중할 수 있는 원리’에 대한 친철한 분석 기사, 그리고 ‘뛰어난 집중력을 위해 어떻게 하나?’, 북한의 양궁선수, 이런 뉴스가 계속 되더니, 북한에서 처형이 강화되어 처벌자가 2배가 되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그 다음 뉴스는 거북이 ‘광복이’가 6년만에 방류된다는 행사 소식. 그리고 이어지는 스포츠 뉴스.
대한민국 사람들 이야기는 없었다. 단 한 줄도.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는 정치와 행정은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사드와 우병우와 일본 출연의 화해재단, 전기세, 하다못해 폭염으로 고통받는 시민의 삶조차도 한 컷 나오지 않는 뉴스였다.
한 엄마가 “한국이 너무나 추해서 돌아가기 싫어.”라고 외국에 나가있는 아이가 문자를 보내왔다며 한숨을 지었다. 누군가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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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하는 말이 뜻없는 무늬가 되버리고, 그 누구도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정의’라는 것, ‘도리’ 또는 ‘양심’이라는 것에 대해 미련조차 갖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럼, 이제 뭘 하지? 이제 살아갈 이유가 없어졌다. 상대가 끝없이 강고하고 사악하고 부정의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나는 약해지고, 무가치해보인다. 어찌보면 이것이 가장 경계해야할 것 아닐까?
올 여름 압록강변에 무수히 펼쳐진 뙈기밭을 보았다. 경사가 45도가 넘어서 저 밭을 일구다 굴렀을 것 같은 곳조차 뙈기밭이었다. 북한 사람들이 겪었을 굶주림의 고통이 산을 벌거벗은 뙈기밭으로 만들었을 거란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 말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기록될 수준이라고.
90년대, 북한 사람들은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을 해도 배급을 못받게 되자, 마을 근교에서부터 20리 30리를 넘게 걸어서 산의 나무를 베고, 뿌리를 캐어내고, 그 자리에 옥수수를 심어 양식거리를 만들었다. 이 ‘고난의 행군’이라 일컬어지던 시절이 지나 지금은 식량 사정이 조금 나아졌고, 산사태 등의 부작용이 커서 뙈기밭이 점차 없어지는 추세라고했다. 북한이 4~5년 전부터 개인경작권을 인정하고, 장마당을 합법화시켜 경작물 처분권을 주니 식량문제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변변한 도구 없이 산을 꼭대기까지 개간한 사람들을 상상하니 경외심마저 일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겨냈다.
근래에 모업체에 납품을 하려다가 공정심사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민원을 제기하고, 또 제기하고, 또 제기하면서 납품 심사 기준을 만들게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당한 불이익에 대해 꼼꼼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로 인해 앞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공정하게 심사를 받게 만든 것이다. 이런 것이 삶을 ‘공정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한다. 자기 일상의 삶에서 불공정한 것과 맞서는 것. 작지만 고쳐나가는 것. 이것이 운동이다.
지금 파주는 시민없는 행정으로 분노게이지가 높다. 운정 한빛 1,2단지 화합의 광장이 속수무책으로 쪼개지면서 동심마저 반토막날 지경이 되었다. 주민의견을 묻는다하더니 화상경마도박장이 기습 승인되어 탄현면 주민들만이 아니라 파주시민 전체가 경악하고 있다. 개통된지 1년이 넘어가는 도로에 버스 노선 하나 신설된 곳이 없고, 야당동 일대의 난개발은 교통사고 위험을 부르고 있다.
제도와 행정이 잘 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시민이 소리를 내어야한다. 직접 밭을 일구듯이 눈앞에 있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고칠 수 있다.
작은 것을 고쳐나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붙들어야할 일이다.
#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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