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콩웰빙마루 시민대책위원회] 성명서

성명서

우리가 사는 파주 탄현면 통일동산에는 수리부엉이가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개체수가 많지 않아 멸종위기종 2급 천연기념물로 보호를 받고 있는데 텃새인 이들이 여기에 둥지를 튼 것은 20년도 넘었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일입니다. 파주 사람들에게 이들은 공생하며 자연을 나누어 쓰는 진화된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는 이웃입니다. 그런데 이 수리부엉이 가족의 터전이 위협 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파주시가 260억을 들여서 둥지 바로 코앞에다 장류 생산을 위한 ‘웰빙마루’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사업 계획서를 보면 된장 항아리 1만 개를 설치할 터를 닦고 산을 파 길을 내고 60m 전망대와 위락시설까지 설치한다니 수리부엉이 가족들이 어찌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지역민이 다 알고 있는 수리부엉이에 대한 언급은 없고 우연히 지나가다 발견된 황조롱이를 대상으로 ‘높은 이동 능력과 넓은 행동반경으로 사업시행으로 인한 피해가 미미하다’는 보고서를 냈다니 환경평가단이 업체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낸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리부엉이가 자기 땅에서 가족들과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삶의 안전판을 확인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탄현면 주민들은 수리부엉이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시민모임을 꾸려 이들 서식지가 누락된 보고서를 낸 업체를 환경청에 고발하여 사업 정지 3개월을 끌어냈습니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일은 이뿐이 아닙니다. 1만 개 장독대 사업의 수익 산출기초를 살펴보면, 300 좌석의 음식점을 하루 300명씩 3회전시키고 그것도 365일 가동해야 나오는 매출에 맞춘 현실성 없는 계산서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대기업의 투자유치로 사업자금을 모은다더니 결과는 텅 비었습니다. 애초 사업계획서에는 민자 101억 원 출자를 목표로 지역 농협과 기업들이 그 대상이었으나 수익이 나는 곳이면 덤볐을 기업들이 한 곳도 없었다는 것은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지역 농협들과 조합원들 역시 사업성을 보장할 수 없는 사업에 60억 원을 투자해 놓고 투자금 손실 걱정으로 속이 타고 있을 것입니다.

시 예산 지원 없이 민자로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장담하던 담당 국장은 사표를 내고 이 회사의 상임대표로 자리를 옮기더니 약속과 달리 시비 50억을 추가 요청했습니다. 그리고는 주민설명회에서 ‘공기업은 손해가 나더라도 지자체 브랜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미 도비 100억원을 포함해 150억원의 세금이 들어간 이 사업에 밑 빠진 독에 세금을 수백억 원 쏟아 부어도 파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이는 내년에 파종할 씨나락을 까먹는 귀신이 하는 짓과 무엇이 다른지요.

수익을 내려는 치밀한 조사와 계획 하에 하는 사업이 아니고 세금이 뒷받침되는 '지자체 브랜드 가치창조'라는 명목으로 방만한 사업을 벌여 토건업자와 몇몇의 일자리 창조로 끝나는 일이 될까 정말 우려스럽습니다. 밑빠진 독에 부을 세금이 있다면 그 세금은 대신, 사서가 없어 책 창고가 된 아이들의 도서관이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며 대중교통 노선 증설 등, 필요한 곳이 셀 수도 없다는 것은 공무원, 시의원들이 더 잘 알 것입니다.

그리고 시의회에게도 묻겠습니다. 주민들이 ‘웰빙 마루’를 ‘혈세 마루’라고 바꿔 부르는 상황에 이르도록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시의회는 뭘 하고 있었습니까. 미심쩍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지자체가 출자, 출연하는 기업은 반드시 몇 가지 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아는데 이들이 이 법을 잘 지켜서 사업을 진행했다고 볼 수 없는 절차적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또한 비록 상위법에 지자체의 투자가 전체 10/100 이상이라 규정했지만, 다른 지자체의 경우 손해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서 보통 절반을 넘지 않는 선에서 안전 투자를 규정하고 있는데, 파주시 의회는 어찌된 셈인지 투자 상한선을 두지 않았고 손해가 나면 그것을 세비로 보전해주는 ‘묻지마 조례’를 통과시켰습니다. 회사가 자본금을 늘려도 시는 상한선이 없으므로 무한 출자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장단콩웰빙마루가 20년간 시유지를 무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시의 행정재산도 마음껏 빌려 쓸 수 있고, 회사의 운영에 필요할 경우 그에 필요한 경비도 마음껏 지원할 수 있습니다. 세금이 줄줄 셀 수 있는 불량 조례입니다. 주민들은 혈세와 수리부엉이를 지키자고 토론회를 열고 사방 민원을 넣고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담당공무원과 시의원을 만나자고 나섰는데, 당신들은 불량 조례를 통과시켜놓고 관광성 외유를 떠났습니다.

권력이 견제 받지 않고 공공의 가치를 잃으면 괴물로 변하는 것을 우리 국민은 지난 정부와 10년간 절실히 경험했습니다. 추운 겨울 내내 시민들은 힘을 모았고 마침내 새봄에는 그 괴물을 물리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깨어났고 우리가 주인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대의정치의 사다리가 무너진 지방은 서울과 가까운 파주라고 해도 아직 그 불빛이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 정부의 100대 개혁 과제에는 이러한 지방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민의 요구를 반영하였습니다. 사문화된 주민참정권인 주민투표 확대, 주민소환 요건 완화, 조례개폐청구권 요건 세부화 그리고 지자체 핵심 정책과 사업까지 주민참여예산제 확대를 통해 주민에 의한 자율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기본인 이러한 내용들이 입법화되어 주민을 대변해야 하는 본래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선출직들을 내치는 ‘주민 마패’로 작동되는 날이 당겨지기를 고대합니다.

파주시는 예산 낭비가 불 보듯 뻔한 이 사업이 수리부엉이 덕에 중단되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이 기회에 수리부엉이와 세금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협치의 구조를 만들어 내실 있는 새 사업을 구상하십시오. 오늘 시민대책위원회는 이 사업에 대해 민관이 머리를 맞대는 협치의 첫 발걸음으로 토론회 청구를 접수합니다. 이후 이 사업의 정상화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주민의 권리를 다할 것입니다. 시민대책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파주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거리가 먼 사업들로 더는 예산이 낭비되고 수리부엉이 가족 문제로 민관의 소모적 갈등이 재연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17. 8. 21

장단콩웰빙마루 파주시민대책위원회

(연락처: 시민대책위 총무 신현정 010-2754-6195

파주시민참여연대(사무국장 박병수 010-7561-2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