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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옛날 이야기 ⑨ 1966년 파주에서 일어난 일들

입력 : 2016-05-13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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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파주에서 일어난 일들

 

문향의 도시, 격동의 도시 파주에서는 50년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1966년 당시에 어떤 사건이 있었으며 어떤 삶을 살았을까? 당시의 각종 문서, 사진 및 간행물과 지역의 노인들을 만나 취재한 것들을 종합하였다.

 

▲1966년 화석정 중건 사진
 

1월 고철 주으러 비무장지대까지

파주 파평면 장파리에 살던 박모, 윤모 씨 등 3명이 출입금지 지역인 임진강 건너 몰래 들어가 고철을 주워오다 북한 군인들에게 납치되었다. 납치후 비밀리에 남파되었는데 무력과 협박에 의한 행위로 참작되어 무죄를 선고받았다.

 

2월 미군부대와 근로자 시위

한국인 부대근로자(노조간부)를 도둑누명을 씌워 해고하자 외국기관 노조 파주지회 900여명이 부대앞에서 농성을 하였다. 미군헌병대 30여명은 착검무장을 하고 휘둘러 4명이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으며 4명이 경상을 입었다. 

 

3월 선거유세

올해처럼 당시에서 선거열기가 뜨거웠다. 3월에는 신한당의 윤보선, 장택상등 거물 정치인들이 파주지역을 다니며 선거운동을 하였다.

 

4월 미군탱크 분해 절도사건

파평면 두포리에 있는 고장 나 방치되어 있던 미군탱크를 몰래 팔려던 사람들이 잡혔다. 당시에는 탄피나 고철이 돈이 되던 시절이지만 너무나 대담한 사건이라 기억하는 노인들을 찾아 취재했는데 탱크의 포 등은 강철 종류라 바늘을 만들 수 있는 소재라서 고가이기에 이런 일을 벌였다고 하였다.

 

5월 법원읍 금곡리 산불

50년전에도 올해처럼 파주에서는 큰 산불이 났는데 법원읍 금곡리에서는 6만평의 임야를 태웠다.

 

▲1966년 법원읍 금곡리, 지금의 쇠꼴마을 부근

 

6월 늘노천 냇가의 비극

파평면 덕천리 늘로천변에서 물놀이하던 아이 두명이 폭탄인줄 모르고 냇가에서 꺼내 놀다가 폭발하여 사망하였다. 이곳은 625전쟁당시 격렬한 포격전이 벌어진 곳으로 이때까지 발견하지 못한 폭탄이 많이 있었다. 탄현면 낙하리에서는 보트로 침투하던 공비들이 총격을 받고 도주하는 사건이 있었다.

 

7월 터키군 철수와 문산 홍수

6.25 전쟁 때 미군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견했던 터키군부대가 16년만에 주둔을 끝내고 한국을 떠났다. 터키부대는 적성면 식현리에 있었다. 여름에는 집중호우로 문산 임월교부근 270만평이 물바다가 되었고 문산시내 주택 100가구가 침수되었으며 500여가구 주민들이 문산초등학교로 대피하였다.

 

9월 기지촌과 교육환경

1966년 파주에는 38개의 기지촌이 있었고 약 4,500명의 양색시가 있었는데 대략적으로 파악한 수치이다. 사실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여성들이 미군을 상대로 돈을 벌었다. 각종 미군을 상대로 술과 몸을 파는 위락업소가 바로 파주군내 12개 초등학교(당시 초등학교 총 30개소) 옆에 있었다.

 

10월 연탄값 폭등

부산에서 16원 하던 연탄 한 장이 파주에서는 30원이 넘었다. 미군부대가 많아 지역의 경기는 호황이었지만, 연탄공급에 문제가 생기자 가격이 다른 지역의 두 배를 넘어가는 일이 생긴 것이다. 연탄도 연탄이지만 서울에서 3,600원하는 쌀 한 가마니 가격이 파주에서는 5천원이 넘어 가난한 파주사람들에게는 끼니걱정을 할 처지가 되기도 했다.

 

▲1966년 지금의 법원리 이마트 부근

 

11월 미군과 마약

문산읍 선유리에 공장을 만들어 몰래 헤로인을 제조하여 미군에게 팔던 일당이 검거되었다. 이때까지 우리나라에서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던 대마가 파주에서 미군들이 피우는 것이 유행하면서 환각성분에 대한 자세한 조사를 시작하였다.

 

12월 시계상 살해사건

미군부대 PX에서 나오는 시계를 싸게 사주겠다고 속여 주내면 연풍리로 유인한 후 돌로 내리쳐 사망케 한 후 시계대금을 훔치고 암매장한 강도가 검거되었다.

 

주요 사건 사고들로 본 50년 전의 파주는 미군부대로 경기가 크게 활성화된 곳이었다. 문산이나 탄현쪽으로는 무장공비가 침투하여 총격전이 벌어지고 임진강을 통해 넘어오는 간첩이 출몰 하였다. 전국의 주먹 쓰는 건달들이 돈을 찾아 파주로 들어왔고 명문가의 양반후손과 양공주가 한동네에서 살던 시절이었다. 그해 임진각 근처에 있던 대원군 묘소가 양주로 이장하였으며 전쟁때 불탄 화석정이 다시 중건되었다.

 

 

 

파주시 파평면 율곡3리 사람 김현국

 

 

 

#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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