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나눔 예술극장 - 말없이 말을 건네는 애니메이션, 먼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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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말을 건네는 애니메이션, 먼지아이
▲먼지아이 / 정유미 감독 / 2009 / 러닝타임 10분 / 35mm / 흑백 / 드로잉,2D
좋은 애니메이션 영화를 고르는 세 가지 기준은 순서 없이 형식(Style), 이야기(Story), 시각적 자극(Spectacular)이다. 그런 믿음을 여지없이 깨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는데 오늘 소개하는 '먼지아이'이다.
이 작품은 전에 없이 새로운 작품이었다. 운동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 애니메이션 미디어 테크닉 특성상 한 장(1프레임)의 그림이 갖는 밀도는 낮아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그런 표현적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이 애니메이션 영화의 프레임들은 시간을 벗고 낱장으로 쪼개져 한 권의 그림책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책이 그림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하였으니 더는 무얼 말하랴.
작품 소개에 애니메이션 연구자 김준양 씨의 말을 빌려보자. "<먼지아이>에서는 먼지가 인간적 존재로 그려진다. 작은 인간 먼지들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정작 방의 주인인 그녀는 별로 놀라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자신과 똑같이 생긴 그들을 이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채 살아가는 것 같다. 아마 먼지아이들은 그녀의 분신들이거나 내면의 잡념들이다."
먼지아이들은 그녀의 분신들이거나 내면의 잡념들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 여자아이가 침대에 누워있다. 잠에서 깬 그녀는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청소를 시작한다. 화장대 위 로션 뒤에도, 침대 밑 어지러운 콘센트 위에도, 심지어 밥상 위에도 소인국에서 나올 법한 벌거벗은 '작은 그녀'가 숨어있다. 먼지아이이다.'
단순한 청소행위에 숨은 무엇이 있을까? 정유미 감독은 말한다. "집에 혼자 있을 때면 가만히 앉아서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생각들을 하다 보면 어느새 머리 속은 쓸데없는 근심, 걱정들로 가득 찬다. 이럴 때 나는 방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부지런히 방을 닦고 설거지를 하고 밀린 빨래를 하다 보면 머릿속에 가득했던 근심, 걱정들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이뿐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 아무것도 숨겨놓지 않았는데 관객들은 스스로 발견하고 위안받는다. 아 나도 그랬는데 하면서.
처음의 기준을 다시 말해본다. 스토리, 스타일, 스펙터클. 이 작품에는 대사가 없다. 말하지 않고도, 운동이미지가 장관을 이루지 않고도 스타일만으로 좋은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보여준 정유미 감독은, 캐릭터의 단순한 행위만으로 말없이 말을 건네는 '조용하고'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이 조용하고 좋은 애니메이션을 확인하고 싶은 독자는 교하도서관에서 '먼지아이'를 찾아보기 바란다. 예술 서가 맨 밑에서 빨간 하드커버안에 잠든 먼지아이를 만날 수 있다. 먼지를 덮은 채 조용히 누워있는.
글 정용준 기자 / 사진 먼지아이 배급사 'Culture Platform' 제공
#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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