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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나눔 예술 극장 - 폭력과 욕망의 경계를 묻는 영화 ‘채식주의자’

입력 : 2016-05-27 11:30:00
수정 : 0000-00-00 00:00:00

폭력과 욕망의 경계를 묻는 영화 ‘채식주의자’

 

▲영화 채식주의자 (2009) 감독 임우성 / 주연 채민서, 현성, 김여진 ⓒ (주)스폰지이엔티

 

채식주의자는 어떤 은유로 시작하지 않는다. 정말 채식주의자가 나온다. 그리고 그의 채식 선언으로 인한 폭력적 소동. 영화에서처럼 어느 날 다 큰 딸이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해서 아버지가 따귀를 때리고 딸이 자해소동을 일으킬 일은 없겠지만, 그보다 조용하게 지금도 소동은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성을 두 개 쓰거나 내 몸에 내가 구멍을 뚫거나 하는 등의 아무것도 아닌 ‘그냥’하는 것보다 아주 조금 나아갔을 뿐인, 남들과 다른 것들은 이유를 강요받는다. 이럴 때 질문은 은밀한 비난이고 굳건한 압력이다.

 

어느 봄날 꽃이 예쁘다고 말했을 때 옆에서 ‘그게 다 생식기잖아’ 라고 산통을 깼던 누군가 덕분에 나는, 10년도 전에 읽었던 어떤 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렸는데, 그녀는 (아마도) 베란다에서 햇빛을 향해 나체로 물구나무섰다. 이미지야 강렬하지만 당시에 그 장면을 읽으면서는 ‘채식을 하다가 점점 식물이 된다는 상상력은 사실 빈약해보이기도 하고 너무 산술적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위의 두 가지 이야기는 각각 ‘채식주의자’, 그리고 ‘몽고반점’ 이라는 제목의 소설에서 나온 건데 하나의 연작소설집에 묶여서 소개된 바 있다. 시나리오는 위의 두 가지 설정을 하나로 섞어서 위의 그녀가 아래의 그녀가 되었다. 소설과 영화의 형식이 달라 벌어진 일이지만 어쩌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그녀’가 ‘그녀’가 되고도 남을 법한 시간이 흐른지라 영화를 감상하는데 원작 소설 독서 체험이 훼방을 놓치 못했다. 다만 소설이 그리고자 했던 폭력과 욕망의 경계와 그 안에서 살아가고 무너져가는 인간의 내면은 소설의 독백이 좀더 자유로이 넘나들었다.

 

영화 채식주의자 의문의 1패. 그래도 희망은 있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아무도 나무와 꽃이 아름답기만 하다고 말하지 못할 터. 여기서는 원작 채식주의자가 의문의 1패.

 

 

 

글 정용준 기자

 

 

 

#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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