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나눔 예술 극장 - 이야기를 시작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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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는 곳
Where the story begins
▲이야기를 시작하는 곳 애니메이션, 라이브액션 혼합 / 감독 김준, 정용준 / 러닝타임 33 분 ⓒ 조용하고 움직일 수 있는 물체들
누구나 이야기 속에 산다. 이야기가 꼬여도 이야기가 더이상 진전이 되지 않는다고 느껴도 어쩔 수 없다. 용기를 가지고 조금씩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 조금의 양보도 없이.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받게 되는 일차적 인상은, 어떤 형식적 낯섦에 대한 것이다. 노란 포스트잇 위에 그려진 단색의 애니메이션과, 끊임없이 풍경을 더듬는 실사 화면의 반복적인, 그리고 지속하는 교차와 병렬. 작품은 꽤나 조용하고, 신중하며, 심심하기 까지 한데, 이러한 형식이 주는 다소 낯설고 생소한 느낌이란, 그런 형식 자체가 실제로 낯선 것이어서라기보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목격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그것과는 여실한 거리감을 보이는 감독의 태도나 지향 때문인 것 같다.
다시 말해 감독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보려고’하며, 해답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잃지 않으려 하고, 따라서 그의 시선은 사실상 외부 세계가 아닌 자기 자신, 그 내면을 향하는 탐색적인 것이다. “세상이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작중 캐릭터의 대사에서 드러나듯, 이것은 자신의 방, 자기 스스로의우주에 대하여 사색하는 한 주체의 시도이며,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내적 성찰의 기록들이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 은, 키르케고르의 발언을 약간 비틀자면, 바로 그런 나(아(我), 그런 주체성의 장소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이다.
“짧은 이야기로 이끌어 준 사람과 거기서 만난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글 정용준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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