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 깃든 생명들 날 좀 봐요, 봐요! (43) 칡, 꼬일대로 꼬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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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 꼬일 대로 꼬인 세상
식물계에서는 출생도 꽤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미 이전에 한번 이야기 나눴던 생태계교란 식물이 되는 귀화식물을 보면 말이죠. 상황이야 어찌되었건, 칡이라는 녀석은 생태계에서 파급력이 무시무시하지만 귀화식물이 아니어서 생태계교란 식물로 지정될 걱정은 없어 보입니다.
그 이전에 칡을 교란식물로 지정하기는 힘든 측면이 있는 듯합니다. 과거부터 아주 쓰임새가 많은 식물이었기 때문이죠. 줄기는 끈 대용으로 이용했고, 꽃은 벌이 꿀을 따거나 차로 마시며, 뿌리는 구황작물로서, 혹은 약으로서 유용하게 이용되어 왔습니다. 넓은 잎은 자연밥상을 차릴 때 접시 대용으로 이용해도 훌륭하지요.
칡의 무서운 점은 역시 덩굴식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빛을 가리는 덩굴성 초본에 비해, 덩굴성 목본이라 억센 줄기가 다른 식물을 감고 올라가서 성장을 방해해 죽일 수도 있죠. 칡의 입장에서야 자연계에서 번식을 하고 생존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선택이지만 말입니다.
같은 덩굴식물 중에도 칡의 이러한 꼬임이 달갑지 않은 녀석이 있습니다. 칡과 반대의 꼬임을 하는 녀석이죠. 덩굴성 식물은 유전적으로 한 종이라면 한 방향으로만 감습니다. 방향을 억지로 돌리려고 해봐도 원래대로 돌아가 버리고 말지요. 칡이 오른쪽 감기를 한다면 등(등나무)은 왼쪽 감기를 하는 녀석입니다.(보는 시각에 따라 방향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둘은 화합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새끼를 꼬거나 굵은 밧줄을 보면 꼬임 방향은 같은 쪽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길게 꼬아 갈 수 있지요. 하지만 방향이 반대라면 둘을 꼬아 나갈 수 없습니다. 칡과 등이 같은 생존 공간에 있다면 혼란 그 자체일 것입니다. 사람이 만나서 악수를 나눌 때에도 이쪽이 오른손을 내밀었는데, 상대방이 왼손을 내민다면 둘은 손을 어색하게 손을 잡아야 하거, 내민 손을 잡기 거부하는 행위겠지요.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고 계시는 이야기죠. 갈(葛)인 칡과 등(藤)의 관계가 만들어 낸 말이 “갈등”입니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생존을 위해 올라가야 하는 입장에서 함께 꼬일 수 없는 다른 식물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일이죠. 화합되지 못하고 상대의 방향과 상관없이 자신의 방향으로만 꼬아 오르려하고 결국 강한 쪽이 남아 상대를 죽이게 될 것입니다. 생존을 위한 그 과정의 꼬임은 얼마나 큰 혼돈일까요? 인척관계의 같은 콩과 식물이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입니다. 인간의 세계도 자연 생태계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만 해도 세대나 남과 여, 또 정치적 이념은 화합하지 못하고 꼬일 대로 꼬인 칡과 등 같아 보이니 말입니다. 오른쪽으로 꼬아 올라가는 칡과 왼쪽으로 꼬아 올라가는 등, 어느 것이 옳은 판단일까요? 모든 덩굴 식물이 같은 방향으로만 꼬아 올라갔으면 이러한 갈등은 없었을 것인데, 왜 같은 방향을 달리하게 되었을까요?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오른쪽이던, 왼쪽이던 치열한 경쟁을 거친 생태계 속에서 둘 모두 살아남았다는 겁니다. 이 둘의 방향에는 옳고 그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화합할 수는 없어도 생존을 위한 다양한 선택인 것입니다. 우리 앞에 있는 선택 요소나 정치적 좌우 대립 역시 어느 쪽의 옳고 그르다기보다, 자신의 정의와 양심을 지켜나간다면 어느 한쪽이 없어져야하는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내민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고 악수를 할 수는 없어도,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가기 위해서라면 오른손과 왼손의 잡음이 어색하지 않을테니까요.
자연환경연구소 식물상 조사원 식물소개꾼 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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