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 깃든 생명들 날 좀 봐요, 봐요! (44)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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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 깃든 생명들 날 좀 봐요, 봐요! (44) 겨울나기
겨울나기
정덕현
바람이 매섭다. 해가 짧아졌다. 기온은 영하로 치닫는다. 춥다. 겨울이다. 숲이 텅 빈듯하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그 찬란했던 가을의 잎들을 떠나보냈다. 사람들은 이를 단풍(丹楓)이라 칭하며 울긋불긋한 빛깔들의 향연 속에서 저마다의 사연들을 만들었겠으나, 정작 나무들에겐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햇볕과 물이 부족해져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된 나무들은 잎자루에 ‘떨켜층’이라는 것을 만들어 잎들을 억지로 떠나보낸다. 새봄이 오기까지는 힘을 아껴야만 하는 것이다. 연연해할 수가 없다. 이 겨울을 버텨내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닥 힘이라도 모아 지켜내야 할 게 있다. 겨울눈. 새 생명의 싹을 품고 있는 결정체인 것이다. 그래서 온갖 비늘과 털들로 겹겹이 감싸 안고 보호한다. 그 겨울눈에 새봄의 햇볕이 깃들면 싹이 트고 꽃이 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나무들의 싹을 먹고 꽃꿀들을 먹고 살아가던 나비들은 모두 어떻게 삶을 이어가는 것일까?
나비들의 겨울나기 모습은 4종류로 나타난다.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의 모습으로 나름의 전략들을 가지고 겨울을 인내한다. 먼저 알의 상태로 겨울을 나는 모습이다.
붉은띠귤빛부전나비월동알
녹색부전나비류월동알
나비엄마들은 아기들이 알을 깨고 나오자마자 안전하게 먹을 수 있도록 그네들만의 식초(食草)위에 알을 낳는다. 겨울눈속이나 나뭇가지 홈 속, 줄기 등이 안식처가 된다. 수많은 천적들이 꼼짝도 못하는 알들을 노릴 테니 그들의 눈에 안 들게 잘 숨겨둬야 한다. 그러나 먹이사슬을 피할 수도 없으니 되도록 많은 알들을 여기저기 낳아둬야 하는 것이다. 그 중 2퍼센트 정도만 성충으로 자라날 수 있다니 나비엄마의 마음으로는 가슴 아픈 일이다.
세줄나비월동태
애벌레상태로 겨울을 나는 모습들이다. 잎들이 나무에서 떨어져 내리기 전까지는 부지런히 먹어둔다. 그러다 기다림의 시간이 다가오면 실을 토해내어 제가 겨울을 날 잎을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묶는 것이다. 그 마지막 잎새는 웬만한 바람에는 끄덕도 않는다. 또 어떤 아이들은 나무줄기를 타고 내려와 떨어진 낙엽 틈새를 파고든다. 잎 뒷면에 붙어 추위를 견뎌내며 싹트는 봄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렇게 엄마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온 잎들은 수많은 생명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요람이 된다. 이를 바라보며 나는 이 세상에 필요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또다시 느껴보는 것이다.
흰나비류월동태
청띠신선나비
번데기 상태로 겨울을 나는 나비들은 먹이식물로부터 떨어져 나와 최대한 안전한 곳을 찾아 고치를 튼다. 위 흰나비류 번데기는 간이버스정류장 천정 위에 자리를 잡았다. 추위도 좀 막을 수 있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니 새들의 눈에도 덜 띄지 않을까 하는 본능적 전략이리라.
마지막으로는 날개를 단 성충으로 겨울을 나는 나비들이 있다. 풀숲이나 바위틈에 있다 햇살 따뜻한 날에는 잠시 볕을 쬐러 나온다. 나는 한 겨울에 어쩌다 그네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큰 행운을 얻은 것처럼 행복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사람들도 겨울나기를 한다. 나비들은 그나마 자연의 흐름에 몸을 내어맡기는 법을 알아 겨울을 난다지만 어쩌면 너무나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들은 ‘계절의 겨울’은 물론이고 ‘마음의 겨울’을 잘 견뎌내지 못한다. 몸이 추우면 마음도 더 추워지는 법이다. 이 겨울에 혹여 몸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시린 이들이 있다면 진정어린 다독거림이 우리들 언 마음을 녹여주지 않을까 싶다.
나는 생명의 흐름들 속에서 언제나 원을 생각하곤 한다. ‘원’에게서는 ‘완성’의 느낌이 든다. 작은 곤충들의 생태싸이클에서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흐름 속에서도 크고 작은 원의 순환을 느끼곤 한다. 그 순환들 속에서 거쳐 가야 할 어느 한 과정이라도 빠지게 된다면 원은 끊어져 완성되지 못한다. 사람이든, 나비든, 몸이든, 마음이든 이 혹독한 겨울을 잘 받아들여 견뎌내지 못한다면 ‘거대한 원의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땅위의 생명들이여, 겨울을 잘 나기를…. 긴 기다림 뒤에 새봄이 올지니.
숲해설가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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